미국이 ‘강제 노동’을 명분으로 한국에 최대 12.5%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지난 2일(현지시간) 예고했다. 당장의 관세 대응을 떠나, 통상 문제에서 노동·인권에 엄격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한국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제 노동이라고 하면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국이 규정하는 강제 노동(forced labor)은 광범위하다.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은 강제 노동인지 판단할 때 국제노동기구(ILO)의 11개 강제 노동 지표를 활용한다. 단순 감금뿐 아니라 ▶임금 체불 ▶신분증 압수 ▶채무 노동 ▶이직 제한 ▶협박 ▶취약 계층 착취 등이다.
4일 미 국무부가 펴낸 ‘2025 인신매매 보고서: 한국(2025 Trafficking in Persons Report: South Korea)’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이 특정 산업에서 강제 노동과 관련해 개선할 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국무부는 매년 인신매매피해자보호법(TVPA)에 따라 세계 각국의 인신 매매, 강제 노동 여부를 평가한다. 최근 무역대표부(USTR)가 관세 정책을 만들 때 참고 자료로도 활용했다.
국무부가 주목한 대표 강제 노동 사례는 전남 신안군 염전 사건이다. 2014년 지적장애인과 노숙인 등이 섬으로 끌려가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수년간 노동한 사실이 드러나 일명 ‘염전 노예 사건’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 정부의 개선 조치에도 불구하고 강제 노동 소지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미 CBP는 지난해 4월 신안 태평 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에 대해 인도보류명령(WRO)을 발령, 수입을 차단하기도 했다. 한국 기업이 강제 노동 문제로 미국의 수입금지 대상이 된 것은 처음이다.
2015년 전남 신안 '염전 노예' 사건에 대한 외신 보도. AP 통신 홈페이지 캡처.
원양 어업과 외국인 선원 문제도 강제 노동 사례로 꾸준히 거론된다. 미 국무부뿐 아니라 의회, 국제 인권단체 등은 한국의 원양·연근해 어선에서 일하는 동남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 여권 압수, 임금 체불, 선박 내 이동 제한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 왔다. 국무부 보고서에선 “외국인 어부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원양 어선과 항구에서 노동 조건에 대한 불시 점검을 더 빈번하게, 일관되게 실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최근엔 농·축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SWP) 문제도 언급된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농촌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필리핀·베트남·캄보디아 등에서 계절 근로자를 도입했는데, 일부 지역에서 열악한 숙소 환경, 임금 체불 문제 등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됐다. 특히 2022년 전남 지역에서 일하던 필리핀 계절 근로자가 집단 이탈한 사건은 국제 사회에서도 주목했다.
한국 입장에선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나 동남아 인근 원양 어업 등 강제 노동과 동급으로 비교되는 점이 억울할 수 있다. USTR은 한국과 중국·일본·영국·호주·대만 등 54개 경제권이 강제 노동 생산품 수입을 막기 위한 법·제도와 집행 체계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1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미국이 분류하는 강제 노동 카테고리에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무역위원장)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선진국인데 무슨 강제 노동이냐’는 식 대응은 불필요하고, 효과도 없다”며 “미국의 판단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기보다 의견 수렴 기간인 7월 6일까지 요구하는 증빙 자료부터 기준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강제 노동과 관련해 지적받은 부분에 대해 충분히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고, 부족한 부분은 시정 조치하겠다는 식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권·노동 문제에 엄격한 유럽연합(EU) 등에서도 향후 강제 노동을 무역 장벽의 빌미로 삼을 수 있다. 당장 관세를 떠나 염전, 수산업 등 취약 업종에 대한 특별 감독 체계를 구축하고, 노동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