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와 은행의 가상자산 거래소 쟁탈전이 뜨겁다. 미래에셋그룹이 일찌감치 코빗 인수에 나선 데 이어, 하나금융과 한화투자증권이 업비트 지분 확보에 뛰어들었다. 한국투자증권도 코인원의 3대 주주로 올라섰다. 여기에 KB금융과 신한금융 등 나머지 은행권이 ‘연합군’을 구성하며 국내 가상자산 시장을 둘러싼 판을 키우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4일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 글로벌 거래소 오케이엑스(OKX), 블록체인 기업 컴투스홀딩스와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어 협력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 29일 4개사는 지분 투자 계약도 이미 마쳤다. 이번 계약으로 코인원 지분은 차명훈 코인원 대표가 30.36%, 컴투스홀딩스가 24.54%, 한국투자증권이 20%, OKX이 20% 각각 나눠 갖는다.
4일 서울 여의도 코인원 본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간담회에서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디지털 금융 생태계 구축을 위한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한국투자증권 제공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이번 투자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FI)가 아니라 전략적 투자(SI)로서 참여한 것”이라며 “향후 제도권 금융과 가상자산 시장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이 언급한 ‘허브 역할’은 해외 금융 플랫폼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해외에서는 주식과 가상자산, 스테이블코인 등을 한 앱에서 거래하는 ‘수퍼앱’이 대세다. 미국 로빈후드가 대표적이다. 주식 역시 코인처럼 24시간 거래할 수 있는 ‘토큰증권’(STO·Security Token Offering) 형태로 확산하는 추세다.
미래에셋그룹도 계열사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지난해 말부터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인수에 착수했다. 현재 코빗 지분 92%를 취득해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를 받고 있다.
박경민 기자
금융사 간 지분 확보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은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다. 하나금융은 지난달 15일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지분 6.55%를 취득해 4대 주주가 됐다. 이어 한화투자증권이 같은 달 20일 두나무 지분율을 기존 5.94%에서 9.84%로 끌어올리며 3대 주주로 올라섰다. 같은 달 28일에는 삼성증권·삼성SDS·삼성카드 등 삼성 계열 3사가 두나무 지분 4% 매입을 발표했다.
나머지 은행권 움직임도 바빠졌다. 지난 1일 KB금융과 신한금융은 토스, IBK기업은행, BNK금융, IM뱅크 등과 비공개 디지털자산 간담회를 열고 가상자산 시장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하나금융을 중심으로 한 업비트 인수 경쟁에 맞서 다른 은행권이 별도의 연합 전선을 꾸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이번 비공개 간담회 자리에서 구체적인 지분 투자 계획은 논의되지 않았다.
전통 금융권의 가상자산 거래소 품기 경쟁에 불이 붙은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금가분리’ 완화 기조가 있다. 금가분리는 금융과 가상자산을 분리한다는 원칙으로, 2017년 정부가 가상자산 투기 억제를 위해 도입한 행정지도 성격의 조치다. 명문화된 법은 아니지만, 그동안 금융회사의 가상자산 보유·매입과 관련 기업 지분 투자 등을 사실상 제한해왔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시장 변화와 가상자산 제도화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변화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규제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서울 서초구 두나무가 위치한 건물의 업비트 로고 모습. 연합뉴스
다만 금가분리 원칙이 곧바로 폐기되는 것은 아니어서 당장 눈에 띄는 시너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 등의 사업화를 위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는 데다, 금융회사와 가상자산 거래소 간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금융당국의 판단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지분 투자는 원화 코인을 누가 발행하고 유통할지 등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에 가깝다”며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제도 방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거래소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시장 진출의 필수 요소라고 판단해 선제적으로 지분을 투자하고 파트너십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며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은 컨소시엄 주도로 개화할 전망이어서 향후 거래소에 대한 전통 금융 기업들의 투자는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