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문정희의 세계는 상투나 위선, 금기 같은 것들의 대척점에 있다. 그것들의 반대편에 싱싱하게 살아 있는 언어, ‘활구(活句)로서의 언어 예술’이 시적 지향점일 텐데 문씨의 새 시집 제목이 그런 점을 재확인시킨다.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
문씨의 새 시집이 출간 40여 일 만에 최근 2쇄를 찍었다. 시력(詩歷) 57년, 팔순을 눈앞에 두고 출간한 시인의 열일곱 번째 시집이 2030 독자들의 손을 탄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Q : 세태 시가 여러 편 보인다.
A : “시인은 시대의 언어를 써야 한다. 최근 언어의 부패와 타락이 심각하게 느껴진다. 시대가 극단적이다 보니 희망을 품기 어렵다. 이런 생각이다 보니 우리 사회의 민낯이나 뻔뻔함, 가짜나 허위에 대해 쓰게 되는 것 같다.”
Q : 언어 타락의 원인을 꼽는다면.
A : “정치 언어의 타락도 있겠지만 역시 한국 사회가 급속 성장하며 인문학적 가치를 잃어버려서인 것 같다.”
Q : 그럴수록 시인의 역할이 중요하겠다.
A : “모든 시는 신선하고 새로워야 한다. 이번 시집 제목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는, 생물학적인 젊음의 강조라기보다 우리가 잃어버린 야성성, 본성으로서 생명의 숨결이나 호흡을 되찾자는 얘기다.”
문씨는 “이 나이 돼 보니 노년은 일대 격전지”라고 했다. 죽음이 더욱 뚜렷이 보이는 절박성 때문인데, 그렇다고 자신을 비우거나 생의 덧없음이나 허무를 긍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만큼 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랑의 헛됨이나 슬픔 같은 감정 경험들이 다채롭게 반짝거려, 생의 환희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된다”고 했다.
Q : 시 안에서, 늑대의 울음 같은 싱싱함을 유지하려면.
A : “나는 무척 떨리는 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손의 쓸모는 무척 다양하다. 언어를 그러모으는 데도, 세상을 감촉하는 데도, 한 작품을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예민한 시각도 손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Q : 떨리는 손은 때 묻지 않은 태도 같은 건가.
A : “주저하는 마음, 한없이 갈망하는 호기심 같은 거다.”
시인은 “그런 손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했다.
Q : 그런 손을 타고났다고 느낀 계기는.
A : “내게는 최초가 많다. 고3 시절 당시 여고생으로는 처음으로 시집을 냈다.(※2010년 국내 여성 시인으로는 처음으로 스웨덴의 시카다상을 받은 것도 문정희 시인이다) 재능에 대한 회의 때문에 창작을 그만두는 시인·소설가가 적지 않은데,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백일장에서 입상하는 ‘소녀 문사(文士)’로 활동하며 내 재능에 대해 의심하지 말자고 결정해 버렸다. 자신감을 차용(借用)한 거다.”
Q :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시인은 결국 언어에 의지해야 한다.
A : “불교의 언어도단의 세계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진리의 세계다. 시인은 말로 표현 불가능한 진리에, 언어라는 미흡한 도구로 가락을 입혀 노래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문씨는 “지금까지 시 쓴답시고, 신선하고 생생한 인생의 시간들을 모두 부러뜨려 발아래 수북이 쌓아 놓은 느낌도 든다”고 했다.
그렇다 한들, ‘말하는 돌’ 같은 짧은 시는 여운이 길다.
“날마다 길을 잃었다// 바람 속으로/ 알몸으로// 헤매면서/ 갇혔다”
시인뿐이랴. 인간은 누구나 말하는 존재다. 동시에 벙어리 같은 존재다. 말하는 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