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곽민수의 이집트 문명] 카세켐위, 갈등의 조정자 ②

중앙일보

2026.06.04 08:02 2026.06.04 13:2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한양대 겸임교수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한양대 겸임교수

초기왕조 시대의 파라오 페르이브센과 그 뒤를 이은 카세켐위의 세레크(왕의 이름을 둘러싼 표식)가 보여주는 변화는, 통일 이집트의 중앙집권 체제가 공고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파라오는 곧 호루스 신’이라는 이데올로기 역시 아직 정립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호루스가 세트를 물리치고 아버지 오시리스의 왕권을 회복했다는 신화는 후대에 체계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초기왕조 시대는 호루스 신봉 세력과 세트 신봉 세력이 주도권을 다투던 경쟁의 장에 가까웠을 수 있다. 1·2왕조 파라오들의 세레크에 주로 호루스를 상징하는 매가 그려진 것은 호루스 진영이 우세했기 때문일 것이다. 페르이브센 시대에 ‘야당’이었던 세트 세력이 일시적으로나마 정권 교체를 이뤄냈고 그래서 그의 세레크 위에 매 대신 세트를 상징하는 네발 동물이 올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파라오 카세켐위의 석상.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사진 곽민수]

파라오 카세켐위의 석상.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사진 곽민수]

카세켐위는 두 진영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그의 세레크에 매와 네발 동물이 함께 그려진 것은 갈등이 해소됐거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시사한다. 그의 이름도 이런 해석에 힘을 보탠다. ‘카세켐위’는 ‘두 힘이 나타나다’ 또는 ‘두 권력이 함께 드러나다’ 정도의 뜻이다. 초기 기록에는 그의 이름이 ‘힘이 나타나다’라는 뜻의 ‘카세켐’이었으므로, 반목하던 두 세력의 통합을 기념해 이름을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 이집트학자들은 내부 갈등을 해결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완성한 카세켐위 이후를 ‘고왕국’으로 구분한다. 이는 최초의 통일 이후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초기왕조 시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시대다. 이때부터 피라미드가 건설되고, 이집트는 약 500년간의 전성기에 들어선다. 사회적 갈등이 언제나 부정적인 결과만을 낳는 건 아니다. 합의로 해소되면 체제 안정성을 떠받치는 토대가 된다. 4700년 전 나일강 유역의 이야기가 요즘 정치 현실에 시사하는 바다.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한양대 겸임교수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