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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의 뉴스터치] 맥락이 거세된 명언

중앙일보

2026.06.04 08:06 2026.06.0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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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선임기자

장혜수 선임기자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경우에,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것일세. 훌륭한 사람들이 정작 통치를 맡게 될 때는 그런 벌을 두려워해서 맡는 것으로 내겐 보이네.”

박종현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역주한 플라톤의 『국가론』(역주본 제목 ‘국가·政體’)의 한 구절이다. 플라톤의 형 글라우콘의 질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이다. 지난달 31일 이재명 대통령은 6·3지방선거 투표를 독려하는 소셜미디어 글에 “정치 무관심의 대가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플라톤”이라고 썼다. 단순한 독려냐 지지층 결집이냐 논란이 일었다. 철인정치를 꿈꾼 플라톤은 대중정치 경계 차원에서 소크라테스를 인용했다. 반대로 이 대통령은 대중민주주의 옹호 관점에서 플라톤(의 책)을 소환했다.

이처럼 명언의 맥락이 거세·치환되는 경우가 있다. 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풍자시 속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도 그런 사례다. 원문은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든다면 (신에게) 기도할 만한 일일 텐데”이다. 내면보다 외모 가꾸기에 집착하던 세태 비판이 반대 취지로 쓰였다.

때로는 명언이 만들어진다.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가 대표적이다. 오다카 도모오 경성제대 교수가 1937년 저서 『법철학』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고 썼다. 이 대목이 소크라테스 말로 둔갑했다.

정치인이 애용하는 명언에 비슷한 사례가 많다.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에이브러햄 링컨), “젊어서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고 늙어서 사회주의자면 머리가 없다”(윈스턴 처칠 또는 카를 포퍼),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알렉시스 드 토크빌) 등이 그렇다. 해당 인물은 그렇게 말한 적 없다. 다른 사람 말이 명언으로 탈바꿈했다.

지선 최종 투표율이 61%다. 역대 두 번째로 높다고 한다. 플라톤까지 소환했던 이 대통령 의도는 적중했을까. 부디 최악의 저질이 지배하는 일은 없는 4년이기를 바란다.





장혜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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