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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효표만 109만표…누군지도 모르는 교육감 아예 안 찍었다

중앙일보

2026.06.04 13:00 2026.06.0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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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서울시교육감 후보자들의 선거 벽보. 뉴스1

서울시장·서울시교육감 후보자들의 선거 벽보. 뉴스1

서울 강남구의 직장인 정모(35)씨는 지난 3일 교육감 투표용지를 받고 기표소 안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다른 투표용지에는 정당명이나 기호가 있었지만, 교육감 용지에는 낯선 8명의 후보 이름만 나열돼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도 기표하지 못한 채 투표함에 넣었다.

정씨는 “‘원조 맛집’이라고 주장하는 식당처럼 선거공보물을 읽어도 모두 진보 단일 후보, 보수 단일후보라고 하니 더 헷갈렸다”며 “아무나 찍었다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아예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정씨처럼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기표하지 못해 무효 처리된 표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100만표를 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일 오후 3시 기준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 선거 무효표가 108만7120표로 집계됐다. 2022년 선거 때(90만3227표)보다 18만3893표 늘었다. 함께 치른 시·도지사 선거의 무효표(43만3975표)보다 2.5배 많다. 후보 이름만 보고 투표하는 교육감 선거의 ‘깜깜이’ 문제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선거에 비해 후보 인지도가 낮은 교육감 선거에서 무효표가 유독 많다. 게다가 후보의 정당 공천이 금지돼 있고 기호도 없어 상당수 유권자에겐 투표용지의 이름만 보고 투표하는 상황이다. 무효는 투표용지를 냈지만 아무도 찍지 않았거나 제대로 기표하지 않아 표로 인정되지 않은 경우로,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기권과는 다르다.



후보 난립해도, 양자 대결이어도…쏟아진 무효표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이번 선거에서 무효표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로, 교육감 선거 무효표(29만9472표)가 시장 선거 무효표(5만6076표)의 5배가 넘었다. 2022년 선거 때(21만7449표)보다도 8만2023표 늘었다.

이번 서울교육감 후보는 모두 8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현직인 정근식 당선인은 30.3%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역대 서울교육감 당선인 중 가장 낮은 득표율이다. 득표수 하위 3명은 각각 무효표보다도 적은 표를 얻었다. 서울 성동구의 직장인 윤모(38)씨는 “교육감은 정말 아예 몰라서 이름을 보고 성씨가 같은 사람한테 투표하려다가 관뒀다”며 “지금까지도 누가 진짜 보수 단일후보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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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의 눈에 후보 간 ‘차이’가 보이지 않는 시·도도 무효표가 많은 편이다. 전북교육감 선거는 진보 후보 간 양자 대결이었는데, 무효표가 5만2719표에 달했다. 무효투표율은 5.57%로, 후보가 8명이었던 서울(5.6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전북 전주의 직장인 양모(41)씨는 “누가 돼도 비슷한 교육 정책을 펼칠 것 같아 교육감 선거는 그냥 찍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남·대전·인천·충남·울산과 같은 접전지에선 1·2위 후보 간 표차보다 무효표가 더 많았다. 선택받지 못한 표가 선택받은 후보 간 격차보다 컸단 얘기다. 경남에선 무효표(7만1333표)가 1·2위 표차(7165표)의 약 10배다.



득표율 10% 미만 후보 6명…선거비용 보전 ‘0원’

낮은 관심 속에 치러진 교육감 선거의 단면은 선거비용 보전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유권자의 관심을 얻지 못하면 표가 일부 후보에게만 쏠리거나 무효표로 빠지면서, 일부 후보는 선거에 쓴 돈을 돌려받을 기준조차 넘기 어렵다. 현행법상 당선되거나 유효표의 15% 이상을 얻은 후보는 선거비용을 전액 돌려받는다. 10% 이상 15% 미만을 얻으면 절반만 돌려받고, 10%를 넘기지 못하면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올해 교육감 선거에서는 전체 후보 58명 중 6명이 10%를 넘기지 못했다. 서울에서만 5명의 후보가 10% 미만이었다.

전문가들은 ‘깜깜이 선거’가 반복되는 배경에 낮은 관심도와 진영화된 선거 구조가 함께 놓여 있다고 본다. 유권자는 후보를 잘 모른 채 투표소에 들어가고, 선거 결과는 교육정책 평가보다 정치적 지형에 좌우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감 선거가 국민의 실생활 이슈로 크게 부각되지 못하다 보니 관심이 낮고, 결국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도 “교육감 선거 결과가 교육정책의 성공과 실패보다 정치적 지형에 따라 좌우되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러닝메이트제나 정당 공천을 허용하는 식의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교육감 직선제를 유지하자는 측에서도 후보 정보를 보다 명확히 제공하고 정책 토론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고 제안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유권자가 후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투표소에 들어가고, 후보들은 진영 구도와 단일화 경쟁에 기대는 선거가 반복되는 한 ‘깜깜이 교육감 선거’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선관위 주관 정책 토론 확대 등 대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연.이보람([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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