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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투석, 여행 꿈도 못 꿨다”…신부전 딛고 기적의 상하이행

중앙일보

2026.06.04 13:00 2026.06.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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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시간) 말기 신부전증 환자들이 중국 상하이에서 여행을 즐기고 있다. 오른쪽부터 말기 신부전증 환자 신지숙씨, 문혜원 간호사, 박지영씨, 문동수씨. 사진 대한신장학회.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말기 신부전증 환자들이 중국 상하이에서 여행을 즐기고 있다. 오른쪽부터 말기 신부전증 환자 신지숙씨, 문혜원 간호사, 박지영씨, 문동수씨. 사진 대한신장학회.

“이번에 여권을 처음 만들었어요. 여권이 필요할 거라곤 평생 생각도 못 하고 살았거든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20년간 투석 치료를 해온 말기 신부전증 환자 신지숙(53)씨는 첫 해외여행을 돌아보며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 투석을 받으면서 해외여행은 꿈도 못 꿨던 일이다. 그럼에도 신씨는 이번 3박 4일간의 중국 상하이 여행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신씨를 비롯한 말기 신부전증 환자 3명이 지난달 28~31일 중국 상하이에서 3박 4일을 함께했다. 대한신장학회와 비영리단체 세계여행투석네트워크(WDTM)가 마련한 ‘상하이 투석 여행’이었다. 투석 기계에 얽매여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던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과 활력을 선물하기 위해 마련된 여행이다.

신장 투석 환자에게 장거리 해외여행은 쉽게 결정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틀에 한 번꼴로 투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해지는 데다, 현지 병원의 시설이나 응급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여행 기획을 총괄한 대한신장학회의 이정표 총무이사(서울대보라매병원 신장내과)는 “가장 중요하게 살펴본 것은 환자들이 안전하게 투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밝혔다.

환자들은 출국 전 복잡한 서류를 사전에 제출했고, 현지에 도착해서도 혈액검사를 진행했다. 특히 의사와 간호사가 3박 4일간 동행하며 환자들의 상태를 살폈다. 4년간 투석을 해온 전동수(42)씨는 “의료진이 같이 온다고 안 했으면 가겠다고 마음을 안 먹었을 것”이라며 “혹시나 하는 (응급) 상황이 생겨도 살펴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3박 4일간 상하이 곳곳을 다니며 여느 관광객과 다름없는 활기찬 일정을 소화했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해 가슴 뭉클한 감동을 나누는가 하면, 유람선에 올라 화려한 도심 야경을 눈에 담았다. 예원 옛거리에서 쇼핑을 하는 한편, 화려하고 역동적인 서커스 공연도 관람했다. 현지 음식도 즐기고, 관광지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내내 이들 얼굴에선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이다병원에서 전동수씨가 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대한신장학회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이다병원에서 전동수씨가 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대한신장학회


여행 이튿날엔 현지 병원인 ‘상하이이다병원’에서 투석을 받았다. 출산 후 신장이 안 좋아져 7년째 투석 중인 박지영(45)씨는 “신경을 많이 써줘서 오히려 한국에서 할 때보다 컨디션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한국에서는 투석할 때 심장이 찌릿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는데, 현지 병원에서는 (투석) 속도를 늦춰서 진행해 혈관에 무리도 덜 가 너무 맘에 들었다”고 했다. 신씨 역시 “다른 병원에서 투석한다는 이질감 없이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편안하고 안전하게 잘 받았다”고 말을 보탰다.

환자들에게 이번 여행은 아픔을 공유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평소 주변에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질환 이야기를 함께 다니며 마음껏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어떤 약을 먹는지, 어떻게 아프게 됐고 어떻게 관리하는지 정보를 공유하고 위로를 나눌 수 있었다”고 했다.

의료진도 뿌듯함을 표했다. 이 총무이사는 “지금은 가까운 중국을 무사히 다녀왔지만, 앞으로 일본, 대만 등 가까운 나라를 시작으로 유럽, 호주, 아프리카, 그리고 환자들이 원하는 크루즈 투석 여행까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오기를 바란다”며 “이를 위해 국내외 병원 간의 네트워크와 시스템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전씨는 전국의 투석 환자들을 향해 용기의 메시지를 건넸다. 그는 “병이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며 “우리 (환자들)도 충분히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세상의 문을 한번 용기 있게 두드려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남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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