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라하라의 호텔 프란세스 로비 1층 벽면에 걸린 동판.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18년 머문 곳이라고 적혀있다. 강정현 기자
붉은 태양이 과달라하라의 빛바랜 석조 건물을 비출 때, 도시는 100여 년 전의 한 이방인을 소환한다. 북중미 월드컵이 열릴 멕시코 과달라하라. 이 곳은 한국 축구대표팀이 조별리그 1, 2차전을 치를 격전지이기 전에, 한 독립운동가가 일본의 압제에 맞섰던 전장이었다.
과달라하라의 호텔 프란세스는 1610년에 문을 열었다. 강정현 기자
과달라하라 센트로에 위치한 호텔 프란세스. 1610년에 문을 열어 역사의 무게를 견뎌낸 로비에 들어서면 익숙하고도 엄숙한 얼굴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1층 벽면에 걸린 동판의 주인공,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이다. 한국인 취재진임을 알아본 호텔 직원도 “도산 안창호! 꼬레아!”를 외치며 반겼다.
시간은 1917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외 한인 대표기관인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이었던 안창호 선생은 미국에서 활동하던 중 한인들 초청으로 멕시코를 방문했다. 그는 해외 한인사회 단합과 독립운동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0개월간 멕시코 전역 구석구석을 순행했다. 농장 등에 흩어져있던 동포들의 가슴에 조국 독립 운동의 불길을 지폈다.
과달라하라의 호텔 프란세스 로비 1층 벽면에 걸린 동판.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18년 머문 곳이라고 적혀있다. 강정현 기자
이듬해 6월12일경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안창호 선생은 거대한 벽에 가로 막혔다. 멕시코시티의 미국총영사관을 방문했지만 일본 영사가 발행한 여행권을 요구 받았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라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 당한 거다.
안창호 선생은 일본 여권을 받아들였다면 손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은 그는 1918년 6월말부터 7월초까지 두달 넘게 과달라하라에 머물며 입국 허가 방법을 찾았다. 마침내 북부 노갈레스를 통해 대한제국 여권을 제시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과달라하라의 호텔 프란세스. 강정현 기자
당시 과달라하라에서 임시로 머문 곳이 프란세스 호텔 20호실이다. 이는 과달라하라 미국 영사와 안창호 선생의 편지에 기록돼 있다. 다만 프란세스 호텔이 당시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했으나 중간에 리모델링을 해서 안창호 선생이 묵었던 20호실은 찾을 수 없었다.
멕시코 한인들의 독립운동 역사를 알리는 안내서 1만부를 주멕시코한국문화원에 기증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안창호 선생이 일본 여권을 절대로 받지 않고 대한제국 여권으로 미국을 넘어 간 건 역사적으로 매우 큰 의미”라고 평가했다. 이후 멕시코 한인들이 독립자금을 송금하고 광복 후에도 국가재건의연금을 보낸 데는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이 크게 작용했다.
국가보훈처와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은 안창호 선생 항일 독립운동의 흔적과 숭고한 숨결을 기리고자, 지난 2017년 호텔측과 협의해 안창호 선생 체류 사실을 기록한 현판을 달았다.
100년의 시공간을 초월해 과달라하라에는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 울려 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안창호 선생이 홀로 외롭게 “나는 대한인”을 외쳤던 그 도시에서 한국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태극기가 새겨진 축구화를 신고 달릴 예정이고, 수많은 한국 축구팬들의 응원 소리와 태극기로 뒤덮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