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안과병원장 김선태(왼쪽) 목사와 미주후원회 회장 용장영 목사가 음악회에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1981년 서울의 한 교회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돕기 자선음악회에서 여섯 살의 한 소녀가 개안수술을 받았다는 간증을 했다. 객석은 어느새 눈물바다가 됐고 그로부터 5년 뒤인 1986년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실로암안과병원이 문을 열었다. 시각장애인인 김선태 목사는 병원장으로 40년간 활동하며 지금까지 무려 3만7000명의 시력을 되찾아준 인물이 됐다.
실로암안과병원 개원 40주년을 기념하는 ‘제12회 시각장애인 돕기 실로암 자선음악회’가 오는 14일 오후 5시 레저월드한인커뮤니티교회(LWKCC, 담임목사 용장영)에서 열린다. 올해는 한국에서 김 목사가 직접 방문해 무대에 오를 예정이라 의미가 더 크다. 음악회는 실로암선교회 미주후원회가 주관하며, 11개 팀이 출연한다.
김 목사의 삶을 단어 몇 개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1951년 6·25 전쟁 발발 직후 3대 독자였던 열 살 소년은 포격으로 양친과 두 눈의 빛을 동시에 잃었다. 친척집을 전전하며 굶주림과 학대를 견디다 결국 도망쳤다. 그렇게 시작된 걸인 생활이 2년 반. 깡통 하나 들고 시장 골목을 떠돌면서도 그는 주일이면 교회에 갔다. 동냥해 모은 돈에서 헌금을 떼고, 동냥해 얻은 음식을 동료 노숙자들과 나눠 먹으며 복음을 전했다. 그의 전도를 받고 훗날 성직자가 된 이도 있다.
한 선교사가 그의 손을 잡아끌어 학교에 보냈다. 맹학교를 거쳐 숭실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원까지. 보이지 않는 두 눈으로 통째로 외워가며 끝내 목사가 됐다. 시각장애인이 안과병원장이 된 것은 세계에서 그가 처음이다. 2007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라몬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을 수상했다.
실로암안과병원은 지하 4층 지상 8층, 약 3000평 규모로 성장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모자병원 협력 관계를 맺은 의료기관이다. 그러나 김 목사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병원의 규모가 아니다. 지금까지 무료 개안수술을 받은 사람이 3만7000명. 진료비, 수술비 전액이 무료다.
사역은 안과병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회 산하로 복지관, 요양원, 직업재활시설, 설리번학습지원센터, 카페까지 운영한다. 시각장애인이 진료받고, 배우고, 일하고, 쉴 수 있는 생애주기 전반의 인프라를 한 사람의 비전 안에서 차근차근 일궈낸 셈이다. 여기에 의료 사각지대를 직접 찾아가는 ‘움직이는 실로암안과병원’도 있다. 46인승 리무진 버스에 안과 시설을 통째로 옮겨 실은 이 이동 병원은 1년에 약 40차례 농어촌과 섬마을, 의료 취약지를 순회한다.
이번 음악회를 주관하는 실로암선교회 미주후원회 회장 용장영 목사와 김선태 목사의 인연은 40년에 가깝다. 용 목사가 미국에 정착한 뒤에도 후원은 계속됐고, 미주후원회 출범 이후 자선음악회는 어느덧 12회에 이르렀다. 이번 음악회의 가장 큰 특징은 참가자들이 출연료를 낸다는 것. 무대에 서는 모든 팀은 1팀당 1050달러의 참가비를 부담한다. 실로암안과병원의 개안수술 비용은 한국 의료보험 적용 후 환자 1인당 약 350달러. 한 팀이 무대에 오르면 곧 세 사람의 눈이 떠진다는 의미다.
미주후원회는 지금까지 180여 명의 개안수술을 직접 도왔다. 김 목사는 “40주년에 부쳐 준비하는 새 비전들이 있는데, 미주 동포들의 지원이 정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