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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블로호 생존 미 해군 장교 에드워드 머피 별세

San Diego

2026.06.0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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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억류…고문 견뎌
퍼플하트 등 다수 훈장
"한국 사랑한 군인" 기억
푸에블로호의 부함장을 지냈던 에드워드 렌즈 머피씨의 장례식이 지난 5월 29일 미라마 국립묘지에서 엄수됐다. 아들인 에드워드 머피 3세(맨 왼쪽)가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고 있다.

푸에블로호의 부함장을 지냈던 에드워드 렌즈 머피씨의 장례식이 지난 5월 29일 미라마 국립묘지에서 엄수됐다. 아들인 에드워드 머피 3세(맨 왼쪽)가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고 있다.

1968년 북한에 나포됐던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USS Pueblo)' 사건의 생존자인 고 에드워드 머피(Edward Renz Murphy Jr.)씨가 미라마 국립묘지(Miramar National Cemetery)에 안장됐다.
 
지난 5월 29일 미라마 국립묘지에서는 3월 5일 향년 88세로 별세한 머피 씨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이날 장례식에는 유가족과 미 해군 관계자 지인들 SD대한민국재향군인회 백황기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 그리고 고인과 오랜 친분을 이어온 한인 지인들(김현중 김용필)이 참석해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 에드워드 렌즈 머피 주니어.

고 에드워드 렌즈 머피 주니어.

머피 씨는 1968년 원산 앞 공해상에서 북한에 의해 나포된 푸에블로호의 부함장(해군 루테넌트)으로 복무했다. 당시 그는 82명의 승조원들과 함께 북한에 억류돼 약 11개월간 포로 생활을 겪었으며 이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으로 무릎 등에 큰 부상을 입었다. 이후 석방된 그는 샌디에이고 엘카혼 지역에서 거주해 왔다.
 
그는 전쟁 중 입은 부상과 공로를 인정받아 퍼플 하트 해군.해병대 메달 해군공로훈장 전쟁포로훈장 등 다수의 군 훈장을 수훈했다. 또한 국가방위훈장과 베트남전 및 한국방위 관련 훈장도 받았다.
 
1937년 캘리포니아 훔볼트 카운티에서 태어난 머피 씨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성장해 일리노이주 프린시피아 칼리지를 졸업한 뒤 1960년 미 해군 장교로 임관했다. 전역 후에는 사업가와 강연가 저술가로 활동하며 푸에블로호 사건의 진실과 전쟁포로들의 희생을 알리는 데 힘써왔다. 특히 회고록 'Second In Command'를 통해 당시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머피 씨의 아들인 에드워드 머피 주니어 3세는 고인을 용기와 헌신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군인으로 기억하며 평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온 인물이었다고 전했다.
 

※푸에블로호 납포사건이란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은 미 존슨 행정부 시절이던 1968년 미 해군 소속 정찰함 푸에블로호가 북한 원산 앞 공해 상에서 북한 해군에 의해 나포되어 82명의 미 해군 인원이 11개월이나 붙잡혀 있다가 승무원들만 풀려난 사건이었다.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23일 북한 원산 앞 공해 상에서 정보수집활동을 하던 중 북한 함정에 의해 나포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북한군의 발포로 승무원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당하였다.  
 
미 함정이 공해 상에서 납치되기는 미국사상 10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행안부 국가기록원 발췌]

케빈 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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