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뿌리에 뒤틀린 보도 유모차와 휠체어 멈춰 서고 낙상 우려에 발밑 보며 걸어 보수 민원 3만 건이나 적체
선천성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이현경씨가 4일 피코 불러바드의 파손된 보도를 보행기로 이동하고 있다. 나무뿌리로 들뜨고 깨진 인도가 시민들의 통행 불편과 안전 우려를 키우고 있다. 김상진 기자
LA 한인타운 곳곳의 인도 환경이 극도로 열악해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가로수 뿌리로 인해 보도가 들뜨고 갈라진 구간이 늘고 있지만, LA 시의 보도 수리 민원이 수만 건 적체된 데다 장애인 접근성(ADA) 관련 사안이 아니면 사실상 보수가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인타운 사우스 옥스퍼드 애비뉴와 샌마리노 스트리트 인근 인도의 경우, 나무 뿌리가 콘크리트 블록을 밀어 올리면서 곳곳이 파손됐다. 블록 사이가 벌어지고 높낮이가 달라져 보행자들의 낙상 사고 우려가 있다. 해당 구간은 오르막길까지 겹쳐 주민들이 발밑을 살피며 걸어야 할 정도로 보행 환경이 악화됐다.
사우스 옥스퍼드 애비뉴와 코네티컷 스트리트 인근 보행로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보도에 구멍이 나 있어 보행자가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장바구니 카트나 유모차, 휠체어 등 바퀴가 달린 이동수단은 틈 사이에 걸리기 쉬워 보행 약자들의 안전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한인타운 주민 조민아(26)씨는 “인도가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 있어 걷다가 넘어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장을 보고 카트를 끌고 지나갈 때면 바퀴가 걸려 중심을 잃을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조씨는 이어 “어두운 시간대에는 깨진 인도가 잘 보이지 않아 더욱 조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인도 보수 속도가 민원 증가세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티브 강 LA 시 공공사업위원회 의장에 따르면 현재 LA 시에 접수된 ADA 관련 보도 수리 요청만 약 3만 건이 밀려 있다. 반면 실제 수리 건수는 연간 약 600건에 그치는 실정이다.
일반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더라도 실제 보수로 이어지기 어려운 행정 구조도 문제다.
강 의장은 “현재 LA 시는 민원 창구인 ‘My311’에 접수되는 민원 가운데 ADA 관련 사안이 아니면 사실상 보수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LA 시는 지난 2015년 ADA 관련 소송 합의에 따라 향후 30년간 약 13억 7000만 달러를 투입해 시내 보도와 경사로를 장애인 접근성 기준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시의 보도 수리 사업도 ADA 기준 충족을 최우선 과제로 운영되고 있다. 일반 보도 수리 민원은 접수되더라도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는 셈이다.
선천성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이현경(65)씨는 "보행기와 전동 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며 "인도가 울퉁불퉁하고 갈라진 곳이 많아 전동 휠체어를 타다가 넘어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장애인 차별이 없는 사회라고 하지만 정작 기본적인 보행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은 장애인들에게 또 다른 차별처럼 느껴진다"며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인도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만 건의 민원이 적체되면서 한인타운 주민들은 사실상 자구책에 의존하고 있다. 주민이 직접 비용을 부담해 수리하거나 지역구 시의원 사무실을 통해 민원을 제기하는 방법 외에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일부 구역은 아파트나 상업시설 재개발 과정에서 인도가 함께 정비되며 개선되고 있지만, 노후 인도가 밀집한 주거지역은 여전히 보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강 의장은 “LA 올림픽을 앞두고 경기장 인근 지역 인프라 개선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지만, 한인타운이 이에 포함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