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대논쟁

Chicago

2026.06.05 14:27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박종진

박종진

천문학 역사에서 대논쟁이라고 하면 은하와 우주에 관한 논쟁을 말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경제, 문화, 과학의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중 과학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잡은 중대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에드윈 허블이 대논쟁의 종지부를 찍고 하룻밤 사이에 우주의 규모를 엄청나게 늘려 놓은 일이다.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은하와 우주라는 말은 구별 없이 쓰였는데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가 우주 전체라고 생각할 때였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증명할 수 없어서 숨을 죽이고 있었고 그 대표적인 사람이 히버 커티스였다. 커티스는 우리 은하 바깥에도 다른 은하가 있으며 이것을 섬 우주(Island Universe)라고 했다. 섬 우주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가 처음 썼던 말로 그의 시대를 앞선 우주관을 엿볼 수 있다.
 
1920년 스미소니언 박물관 강당에서 토론회가 열렸는데 이를 섀플리-커티스의 대논쟁이라고 한다. 커티스는 우리 은하 바깥에도 섬 우주처럼 존재하는 은하가 있다고 했지만, 섀플리는 우리의 은하가 바로 우주 전체라고 생각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바로 에드윈 허블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변호사가 되었으나 천문학자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시카고대학에서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관측 장비가 좋아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캘리포니아주 LA 근교의 윌슨산 천문대에 가서 일하려고 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져 참전하느라 미루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의 원대로 윌슨산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의 직속 상사가 바로 할로 섀플리였고 그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다투었는데 세상에는 까닭 없이 미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섀플리는 우리 은하 속 태양계의 위치를 발견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빅뱅 이론을 주창한 벨기에의 가톨릭 신부였던 조르주 르메트르의 지도 교수를 했고, 피는 못 속이는지 최근에 그의 아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섀플리는 평화주의자였지만, 허블은 양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으며 영국에서 기껏 몇 년 유학했음에도 영국식 악센트를 썼고 시건방지게 보이는 파이프 담뱃대를 물고 다니면서 사사건건 섀플리와 충돌했다. 직장 상사였던 섀플리는 허블에게 실내에서는 담배 피우지 말 것을 요구했으나 허블은 듣지 않았다. 다행히 2년도 안 돼서 섀플리가 하버드 천문대로 자리를 옮기자 그들의 악연은 끝난 것 같았다.
 
당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힘들었던 때였는데도 헨리에타 리빗이란 여자가 변광성을 발견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그녀는 변광성의 특징을 이용해서 지구에서부터 그 별까지의 거리를 구하는 법을 알아냈다. 허블은 이 법칙을 이용해서 당시는 우리 은하에 속했다고 생각하던 안드로메다 성운 속 변광성까지의 거리를 구했고,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보다 훨씬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몇 번 더 확인한 다음, 지난날 상사였던 섀플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허블의 편지를 본 섀플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편지가 내 우주를 깨버렸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허블은 외부 은하의 존재를 밝혔고, 은하끼리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내자 시간을 역추적하여 모든 것이 시작했을 때를 상상했다. 바로 빅뱅의 순간이었다.  (작가)
 
 
 

박종진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