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시피를 밥줄처럼 움켜쥐고 주방 문을 닫아걸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이제는 비즈니스적인 관점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
임희원 셰프는 "k-푸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 본질을 설명할 수 있는 콘텐트와 시스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임희원
임희원 셰프는 누구보다 화려한 성공을 경험한 인물이다. 30대에 방송가를 종횡무진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스타 셰프'라는 수식어를 가장 먼저 얻은 세대 중 한 명이었다. 방송 스케줄로 하루가 가득 찰 만큼 바쁜 나날을 보냈고, 그의 요리는 곧 트렌드가 됐다. 하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늘 질문이 남아 있었다.
"방송이 나에게 어떤 공신력을 주는지 모른 채, 그저 재미있어서 했다. 인기를 크게 얻었지만, ‘나는 지금 요리를 하고 있는 걸까, 방송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셰프로서의 갈증이 생겼다."
그 갈증은 그를 홍콩이라는 거대한 시장으로 이끌었다. 국내에는 ‘모던 코리안’이라는 장르조차 생소하던 시절, 그는 홍콩의 대형 레스토랑 총괄 셰프로 부임해 현지 미디어가 선정한 최고의 캐주얼 레스토랑 1위를 차지하고 미슐랭 가이드에 이름을 올렸다. 대중성뿐만 아니라 요리사로서의 독보적인 공신력까지 스스로 증명해 낸 순간이었다.
임희원 셰프가 운영하는 한남동 부토(BUTO)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와 야심 차게 문을 연 레스토랑 ‘부토(Buto)’가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벽과 마주해야 했다. 외식업계 전체가 침체기에 빠지고 인력난과 노동 대비 비효율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와 부딪히면서, 그는 주방 안에서의 퍼포먼스에만 머무는 전통적인 식당 구조의 한계를 처절하게 깨달았다.
"좋은 요리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식당도, 셰프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이후 그는 주방 안에 머무는 셰프가 아니라 식문화를 설계하는 기획자이자 사업가로 시선을 넓혔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효율적으로 음식 문화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 현재 그는 푸드 패커를 이끌며 다양한 식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K-푸드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지금, 화려한 기술보다 음식의 본질을 현재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를 집에서 즐기는 요리 클래스 지글지글클럽 영상 촬영 현장에서 만났다.
Q : 벌써 22년차 베테랑 요리사다. 처음 요리를 언제, 왜 시작하게 되었나.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이른 나이에 한정식당에 입사하면서 처음 요리 세계에 발을 들였다. 특별히 거창한 동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어린 나이에 눈앞에 마주한 요리라는 일에 온전히 몰두했던 것 같다. 이후 군대 취사장까지 거치며 20대 내내 주방에서 쉬지 않고 칼을 잡으며 요리사로서의 기초 체력을 단단하게 다졌다.
서른 살 무렵 올리브쇼에 출연했던 임희원 셰프. 사진 올리브쇼 캡처
Q : 2010년대 중반 올리브TV 〈올리브쇼〉 등에서 독창적인 '셰프의 킥'으로 대중의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스타 셰프'로 거듭났다. 당시의 기억은 어땠나.
서른 살 무렵 방송을 시작하면서 훈훈하고 젊은 감성의 스타 셰프 군단 주축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떡볶이에 땅콩버터를 넣은 '호로록 떡볶이'나, 양념에 아메리카노를 넣은 '아빠 불고기'처럼 요리 초보자도 집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레시피를 유쾌하게 풀어낸 덕분에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셀럽의 셰프'로 출연해 1회 첫 주자로 등장했을 때도 당시의 친근한 매력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했다.
Q : 국내에서 대중적인 탑티어 셀럽 셰프로 잘나가던 중, 돌연 홍콩이라는 해외 진출을 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방송국 스케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대중의 스포트라이트 뒤로 문득 허무함이 밀려왔다. 이 방송이 나에게 어떤 공신력을 주는지도 모른 채 그저 예능적인 재미에만 치중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요리사로서의 갈증이 컸다. 진짜 공신력을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에 홍콩행을 택했다. 당시 해외에는 ‘모던 코리안’이라는 장르가 전무하던 시절이었는데, 80석 규모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를 맡아 현지 캐주얼 레스토랑 1위, 2018년 미슐랭 가이드 등재라는 성과를 거두며 요리사로서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한남동 부토(BUTO)의 메뉴. 한식을 새롭게 해석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임희원
Q : 한국으로 돌아와 오픈한 와인바 ‘부토(Buto)’에서 가마솥 밥을 선보이며 ‘솥밥 열풍’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코로나19라는 외식업계 침체기를 겪으며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좋은 재료는 좋은 땅에서 나온다’는 주제로 부토를 열고, 매장에 진짜 아궁이와 가마솥을 앉혔다. 삼촌들과 아궁이 앞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던 어릴 적 따뜻한 추억, 즉 ‘식구(食口)’라는 개념을 손님들에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매일 밤 8시에 갓 지은 가마솥 밥을 퍼주는 퍼포먼스가 큰 사랑을 받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주방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심각한 인력난을 겪으면서 노동 집약적이고 시간 대비 효율이 나오지 않는 구조로는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과거의 대선배들은 레시피를 절대 공유하지 않는 ‘밥줄’로 여겼지만, 이제는 그렇게 문을 닫아걸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Q : 그래서 주방을 넘어 ‘푸드 패커’라는 푸드 테크 회사를 설립하고 시스템화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인가.
그렇다. 식당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 우리가 다루는 식재료와 레시피라는 IP(지식재산권)를 가지고 글로벌하게 확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 회사를 설립했다. 지금 K-푸드가 전 세계적인 열광을 얻고 있지만, 정작 그 본질을 현대적으로 풀어내어 이야기할 수 있는 콘텐츠나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한식을 현대적인 신문화로 재정의하는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Q : 지글지글클럽에서 소고기(육우) 요리를 가르치는 콘텐츠에 참여하게 된 것도 그런 비즈니스 축의 연장선인가.
정확히 일치한다. 과거 방송 활동을 할 때는 예능적인 재미에 치중되다 보니 요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나만의 철학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해 늘 아쉬움이 남았다. 내 요리와 식문화에 대한 메시지를 대중에게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었다. 지글지글클럽의 ‘요리를 배워요’는 ‘셰프의 요리’라는 높은 문턱을 낮추고, 식재료와 셰프의 레시피를 소비자의 주방으로 직접 배달해 함께 호흡한다는 취지가 참 매력적이다.
우리가 주말에 나만을 위한 특별한 대접을 원할 때, 그것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편리함을 넘어 하나의 즐거운 ‘액션(체험)’이 된다. 이번 클래스에는 그동안 꼭꼭 숨겨두었던 나만의 치트키와 조리 팁을 아낌없이 담았다. 요리에는 정답이 없다. 독자분들이 집에서 정성 가득한 재료를 직접 만지고 요리하며, 가이드라인 안에서 자신만의 취향과 미식의 즐거움을 맘껏 발견해 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참여했다.
Q : 식문화를 설계하는 혁신가로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임희원 셰프가 보여줄 포부와 최종 종착지가 궁금하다.
단기적으로는 전통 술빵을 현대적으로 복원한 새로운 브랜드 ‘드렁큰 도우’를 곧 대중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사람과 지역, 기업을 식문화라는 매개체로 연결하는 복합 공간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기술자에 머무는 시대는 끝났다. 음식을 매개로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하고 한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는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향해 가는 최종 종착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