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룸' 스틸컷. 클락이 자신의 가구 매장 지하에서 발견한 백룸을 탐험하고 있다. [사진 바이포엠 스튜디오]
집이나 회사 사무실 같은 일상의 공간 구석에서 우연히 숨겨진 공간을 발견하면 호기심이 발동한다.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처럼, 그곳이 또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시작점이라면?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한 발짝 내딛지 않기란 쉽지 않다.
한국과 미국에서 흥행 중인 공포·스릴러 외화 ‘백룸(Backrooms)’은 이런 심리를 자극하는 인터넷 괴담 기반 유튜브 시리즈에서 시작했다.
미국의 독립영화 제작·배급사 A24가 3년 전 10대 유튜버 케인 파슨스를 감독으로 발탁해 1000만 달러(약 150억원)라는 초저예산으로 제작했다. 개봉 약 일주일 만에 전 세계에서 14배의 매출을 올렸다. 더불어 올해 20세가 된 케인 파슨스는 데뷔작으로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5일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백룸’은 미국에서 개봉한 지난달 29일부터 3일까지 박스 오피스 1위를 유지하며 1억386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 27일부터 누적된 전 세계 매출은 1억4097만 달러다. 국내에선 ‘군체’에 이어 줄곧 박스오피스 2위를 지키다 ‘와일드 씽’ 개봉(3일)을 기점으로 3위로 내려왔다. 외화 기준으론 1위다.
영화 '백룸' 스틸컷. 클락을 상담하는 의사 메리가 평소에 클락이 말하던 가구 매장의 백룸을 찾고 있다. [사진 바이포엠 스튜디오]
영화는 대형 가구 매장을 운영하는 클락(추이텔 에지오포)이 자신의 매장 지하에 숨겨진 공간(백룸) 발견해 그곳을 탐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무심한 표정으로 클락의 심리를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 메리(레나테 레인스베)도 어느 날 사라진 클락을 찾으려다 백룸 세상에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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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공포 극대화한 연출
영화 속 백룸은 뻔한 공포 영화처럼 누가 봐도 수상한 어둡고 으스스한 공간이 아니다. 마치 오랜 시간 바랜 듯한 누런 색감의 벽지와 축축한 카펫, 밝은 형광등이 공간을 가득 채운 사무실 같은 곳이다. 익숙함과 공존하는 이상하게 낯선 느낌은 의자가 텅 빈 곳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평소엔 듣기 어려운 형광등의 ‘웅웅’거리는 소리, 창문 하나 없는 공간이 기묘한 느낌을 증폭시킨다.
이런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친숙하지만 낯선 느낌을 주는 공간)는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다 옷과 모자 등 마치 이전 탐험가들의 잔해가 무덤처럼 쌓인 공간이 나올 때쯤, 긴장감은 공포로 바뀌기 시작한다.
‘백룸’은 또 아날로그 캠코더로 촬영한 ‘파운드 푸티지’(우연히 발견된 영상) 연출로 공포를 극대화했다. 캠코더를 들고 백룸을 탐험하다 무언가에 쫓기는 클락의 흔들리는 시점과 거친 숨소리는 긴장감을 끌어 올린다. 초대형 예산이 투입된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 영화의 매끈하고 화려한 영상과는 정반대의 날것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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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로 이어지는 해석의 여지
수많은 방을 클락의 무의식 세계로 해석하는 재미도 있다. 상실감과 무력감, 짜증에 시달리던 클락이 백룸 깊숙한 곳에서 결국 자신이 마주하기 싫었던 상처의 근원을 마주하고, 상담실에서 클락의 고통을 무심한 자세로 관조하던 메리는 그 장소에서 클락과 지위가 역전된다.
'백룸' 세계관의 시초가 된 사진. 2019년 해외 인터넷 커뮤니티 4chan에 올라와 인터넷에 퍼졌다. [레딧]
이처럼 영화를 보는 동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속 무의식 이론이 떠오르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반드시 이렇다 할 해석이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단지 2019년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4chan’에 올라온 사진 한장에 네티즌들이 살을 붙이며 확장된 세계관처럼, 별다른 의미 없는 기묘한 느낌 자체가 영화를 이루는 토대다. 케인 파슨스 감독은 이 괴담을 바탕으로 2022년 페이크 다큐멘터리 ‘백룸’을 만들어 이미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백룸의 인기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란 해석이 나온다. 영화 제작자인 마이클 클리어 아토믹 몬스터 대표는 버라이어티에 “‘백룸’은 유튜브 현상이라기보다는 인터넷 현상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더불어“영화계가 지나치게 예측 가능해지는 상황에서 케인 같은 감독들은 아주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며 “제작 승인 결정을 내리는 건 스튜디오의 나이 든 사람들일 때가 많은데, 그들은 관객과 동떨어져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