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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타임머신] 포항제철 1고로 화입식

중앙일보

2026.06.07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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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1973년 6월 8일 오전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은 비장했다. 그날은 준공한 제1고로에 처음으로 불씨를 지피는 날이었다. 그의 손에는 점화용 화입봉이 들려 있었다. 화입봉이 풍구에 들어가자 고로에 불이 붙었다. 포항제철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에서 그 불씨가 지닌 상징성은,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의 불에 비견될 만했다.

철은 ‘산업의 쌀’이다. 밥을 지으려면 부뚜막과 솥이 있어야 한다. 제철소가 부뚜막이라면 고로는 솥이라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뜻은 확고했지만 당시 국내의 기술력과 자본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박태준 사장과 임직원들은 “실패할 경우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투신한다는 각오”로 달려들어, 통상 4~5년 걸리는 제철소 건설을 3년 만에 끝냈다.

용광로에 불을 붙인 다음 날인 6월 9일 새벽부터 제1고로는 빨갛고 뜨거운 쇳물을 토해냈다. 박 사장과 임직원들은 함께 환호했다. 한국 산업화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6월 9일을 ‘철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내부 용적 1660㎥의 제1고로는 당시 기준으로 보더라도 크지 않았다. 요즘 지어지는 초대형 고로와 비교한다면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이 작은 고로가 가동 다음 날인 6월 9일부터 48년이 넘도록 쇳물을 생산해냈다. 그렇게 생산된 5520만t의 쇳물이 흐르는 동안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30위 바깥의 개발도상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으로 올라섰다. 식민 지배를 받던 동아시아 끄트머리 작은 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세계사의 기적이었다.

“여러분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을 이뤄냈고, 나에게는 생명의 은인입니다.” 쇳물 생산 성공 후 박 사장이 임직원에게 한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품게 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작고 낡은 제1고로는 중국과 개도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2021년 12월 29일로 생산·가동을 종료했다. 제1고로의 불은 꺼졌지만, 그 불씨는 새로운 산업과 다음 세대의 손에서 계속 타올라야 한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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