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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빨간 모자의 기적

Los Angeles

2026.06.07 18:50 2026.06.0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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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수필가

이정아 수필가

이웃에 사는 시인은 심성도 곱고 살림도 잘하신다. 우리 텃밭의 채소나 과일을 가끔 나누어 먹고, 우리 집에 식혜가 떨어질 만하면 현관 앞에 두고 가신다. 일 년 내내 사시사철 식혜를 공급한다. 몸이 아픈 남편의 수발도 지극정성으로 하고 시집간 딸의 뒷바라지도 열심히 한다. 화려한 미모여서 ‘살림꾼’이나 ‘지극정성’과는 거리가 멀듯 보여도 가까이에서 오랜 세월 지켜본바 무엇에나 진심을 다 한다.
 
지난번 우리 집 남편이 멕시코 테픽으로 선교 갔을 때, 혼자 있다고 밥도 사주고 반찬도 냉장고가 터져나갈 정도로 바리바리 만들어와서 채워주셨다. 그날 밥 먹으며 이 말 저 말 하다가 왜 모자를 늘 쓰냐고 내가 물었다. 머리 손질하러 미용실 가면 커트와 염색에 200달러가 들어서 그걸 아끼려다 보니 엉망인 머리 가리려 운동모자를 쓴다고 한다. 나도 같은 미용실을 다녔는데 연금 받는 나이가 되면서 끊었다. 웰페어 타는 백수가 머리 손질하기엔 너무 비싼 곳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요즘 한인타운 노인들 머리하는 곳에서 가장 싼 요금으로 커트도 하고 펌도 한다니 깜짝 놀란다. “몰랐어요. 촌스럽지 않아요. 50달러짜리 같지 않아요.”  외모가 평준화된다는 70대에 촌스럽고 세련된 게 큰 차이가 있을까마는. 사뭇 놀란 눈치다.
 
흰색과 검정 모자를 번갈아 쓰기에 원래 빨간색 좋아하지 않냐 물으니 안 그래도 빨간 모자를 사고 싶단다. 원하는 걸 잘 들어두었다가 식혜시인에게 빨간 모자를 선물했다. 워낙 갚아야 할 사랑의 빚이 많기에 한참 모자라지만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 어울리니 서로 기분이 좋았다.
 
며칠 후 시인이 봉투를 가져와 내민다. 봉투 안에는 200달러가 들어있다. 내 말을 듣고 깨우쳤단다. 돈이 많아 선교하는 게 아니라 아껴서 남을 위해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빨간 캡을 쓰고 다니느라 당분간 머리할 돈 굳었다며 그 돈을 선교지 아이들 학용품 사는데 보태라고 한다. 또 아껴서 모아보겠단다. 나이 들으니  눈물샘도 말랐는데 눈물이 핑글 돌았다.
 
하나님이 이런 시나리오를 쓰시다니 정말 놀랍고 감사하다. 세상을 향해 선의의 부메랑을 날려 보내면 내게 더 한 선의로 되돌아오는 걸 살면서 체험한다. 빨간 모자의 기적, 부메랑의 선순환이 아닐까?

이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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