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을 맞은 8일에도 서울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전날 밤부터 시위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정치적 시위’와는 거리를 두려는 젊은 층 주도의 시위에서 구호에 “부정선거”를 추가하며 광화문 등에서 벌어지던 기존 강성 보수 성향 시위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시위 장소인 핸드볼경기장에서 여자 유소년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이 시위 참가자로부터 소지품 검문검색을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투표소 봉쇄 시위 현장에 성조기와 부정선거 관련 팻말이 재등장했다. 김예정 기자
이날 오후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는 약 1800명 이상이 모여 시위를 이어갔다. 자정쯤 약 8000명 규모였던 시위는 나흘째 월요일이 되며 규모가 줄었지만, 일부 참가자가 밤새 잔디밭 등에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0·30대 참가자의 비중은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져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날 참가자들은 “부정선거, 재선거”라는 구호를 반복해 외치고 있었다. 전날 낮 시간대까지만 해도 이들은 구호를 “재선거”로 통일하고, 이밖에 다른 구호나 정파적 메시지가 나오는 것은 자체적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현장엔 전날까지 곳곳에 붙어 있던 ‘태극기만 흔들자’는 내용의 팻말이 뜯겨 있거나 ‘부정선거 구호 가능’ ‘성조기 가능’으로 문구가 수정돼 있었다. 또 ‘이제는 부정선거 의심해도 됩니다’ 등의 종이가 새로 붙고, 성조기도 재등장했다.
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개표소 시위 현장에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팻말이 붙어 있다. 김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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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연 프락치 협조 금지” 주장 확산
시위에 “부정선거” 구호가 추가된 것은 부정선거론을 따르는 참가자들이 “재선거만 외치자”는 참가자를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라는 게 당시 참가자의 설명이다. 소셜미디어(SNS)에는 “대진연 지령이 유출됐다”며 “이재명 구속 등 정치 구호 금지, 경찰 협조 등을 유도하면 대진연 프락치이니 절대 협조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게시물이 유통되기도 했다. 일부 참가자는 대진연 소속이란 의심을 받아 시위에서 이탈했다는 게시물도 있었다.
시위 첫날부터 매일 현장에 나왔다는 30대 윤모씨 부부는 “재선거뿐만 아니라 부정선거니까, 부정선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합의가 있어서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이라며 “당일 선거만 하고 현장에서 개표하게 선거 자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파구 주민이라는 이모(75)씨는 “여기 나오는 사람이 대개 20·30대 학생인데, 이렇게 외치는 것을 보면 문제가 크다”며 “현 정부가 재선거로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투표소 봉쇄 시위 현장에 붙어 있던 ‘재선거 구호와 태극기로 통일하자’는 내용의 팻말(종이 윗부분)이 뜯겨 있다. 김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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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유소년 핸드볼 선수들까지 검문검색
이날 오전에는 여자 유소년 핸드볼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봉쇄된 핸드볼경기장에 훈련 기구를 꺼내러 갔다가 시위 참가자로부터 자체 검문검색을 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선수들은 오는 24일 열릴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U20) 출전을 앞두고 이곳에서 연습하려고 했으나 시위로 인해 건물이 봉쇄되자 인근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훈련하기 위해 용품을 꺼내러 가는 길이었다.
시위 참가자가 계속해서 선수들의 경기장 진입을 막자, 결국 한 선수가 “제발요”라며 손을 비비는 등 호소했고 그제야 시위 참가자는 길을 터줬다. 이후 선수들이 공인구 등이 담긴 가방을 들고나오자 시위 참가자가 몰려들어 소지품 검사를 했다. 한 남성 시위 참가자가 “양말도 벗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가 경찰 등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도 받았다고 한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며 개표소 봉쇄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로 인해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이 통제된 가운데 8일 여자주니어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이 경기장 내부에 보관 중인 훈련 장비를 가지고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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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시위대가 경찰 복장·근무지 사실상 통제”
이날까지도 일부 참가자는 청테이프를 팔뚝에 완장처럼 붙인 채 경찰 교대 인력의 길을 터주거나 자발적으로 간식 등을 배부하고 있었다. 전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한 경찰관이 “시위대가 사실상 경찰력을 통제했다”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시위 현장에 출동한 기동대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작성자는 “시위대가 (경찰) 투입 인원의 복장을 점검했다”며 “시위대 인솔자가 (경찰) ‘근무자는 여기서 일하라’고 근무지를 지정해줬다”고 밝혔다.
해당 경찰관은 구체적으로 “마스크·선글라스·불봉 등을 착용하면 (근무 장소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며 “근무모와 형광 조끼만 입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들이 그 수많은 시위대를 지나쳐갈 때 비아냥처럼 낄낄대고 박수치고, 시위대 인솔자가 경찰을 데리고 그사이를 지나가게 하는 것 자체가 경찰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에서 집회·시위 현장 근무 경찰관을 대상으로 ‘외국 경찰’ ‘가짜 경찰’ 등 확인되지 않은 억측과 경찰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이 퍼지고 있다”며 “해당 인원은 직무를 수행 중인 대한민국 경찰관으로서, 제기된 의혹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전국 14만 경찰관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정당한 법 집행을 어렵게 하는 근거 없는 허위사실 유포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시위로 5명의 경찰관이 경상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