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규(25·튀르키예 베식타시)에게 추어탕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은 경기도 남양주에서 추어탕집(오서방 추어탕)을 운영한다. 오현규는 “남들이 이유식을 먹을 때 나는 추어탕에 밥을 말아 먹었다. 평생 만 그릇은 먹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질릴 만도 한데, 그는 월드컵 출국 전날에도 대표팀 동료 이한범, 에이전트 김홍근 대표와 함께 추어탕 한 그릇을 바닥까지 비워냈다. 그에게 추어탕은 음식을 넘어 자신의 삶과 뿌리를 되새기는 의식이다.
박지성 JTBC 해설위원이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의 첫 골 주인공으로 꼽은 선수가 바로 오현규다. 수원 삼성 시절 별명은 ‘아기 괴물’이었고, 벨기에 헹크에서 뛸 때는 쉴 새 없이 달린다고 ‘머신’이라 불렸다. 탄탄한 체격(1m85㎝·87㎏)에 터질 듯한 허벅지를 자랑하는 그는 이 모든 강인함이 추어탕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오현규(왼쪽)는 월드컵 출국 전날에도 대표팀 동료 이한범, 에이전트 김홍근 대표와 함께 추어탕 한 그릇을 바닥까지 비워냈다.
오현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는 “축구팀 회비를 내기가 어렵다”며 미안해했다. 결국 회비를 내지 않는 수원 삼성 산하 매탄중에 입학한 소년 오현규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운동했다”고 회상했다. 수원 삼성 출신 조원희는 “현규는 매탄고 시절 늘 훈련 1시간 전부터 나와 준비했다. 자기 관리가 워낙 남달라 모두가 ‘얘는 무조건 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친구들과 한창 놀 나이인 18세에 그는 유럽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군팀 김천 상무 입대를 선택했다.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뛰던 시절이었다.
그의 삶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OST ‘시작’의 가사와 닮아 있다. “부러진 것처럼 한 발로 뛰어도, 난 나의 길을 갈 테니까. 버티고 버텨 내 꿈은 더 단단해질 테니 다시 시작해.”
셀틱(스코틀랜드)을 거쳐 헹크에서 성장을 거듭하던 그는 지난해 9월 슈투트가르트(독일)로부터 이적료 2800만 유로에 영입 제의를 받았지만 막판에 불발됐다.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었지만 오현규는 “인생에 항상 좋은 일만 있으면 재미없지 않나. 이렇게 좌절도 하고 실패도 맛봐야 더 강해지고 단단해진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해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넣은 직후 오현규는 왼쪽 무릎을 가리켰다. ‘내 무릎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사진 KFA
이적이 무산되고 열흘 뒤, 미국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 오현규는 1골 1도움을 터뜨리며 무력시위를 펼쳤다. 골을 넣은 직후 그는 왼쪽 무릎을 가리켰다. ‘내 무릎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당시 득점 장면을 수만 번 돌려봤다는 오현규는 이번 월드컵에서 다시 만날 멕시코에 대해 “홈 팬들의 야유마저 즐기겠다”고 했다.
오현규는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 슈팅을 때려내는 ‘노빠꾸 축구’, 아스널 공격수 빅토르 요케레스를 연상시키는 파괴력, 무득점으로 교체되면 손으로 벤치를 쾅쾅 내리치는 뜨거운 승부욕을 지녔다.
축구대표팀 단짝 오현규(왼쪽)과 이강인이 과달라하라에서 함께 훈련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2001년생 동갑내기 이강인과는 그야말로 ‘영혼의 파트너’다. 둘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도 언제 스루패스를 찔러주고 언제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어야 할지 본능적으로 교감한다. 지난해에만 이 방식으로 2골을 합작했다. 이번 조별리그 1차전 상대인 체코의 발 느린 장신 수비진을 무너뜨릴 가장 확실한 필살 카드다.
4년 전 카타르 월드컵 당시 오현규는 등번호가 없는 27번째 예비선수로 동행했다. 흰색 운동화가 잔디독이 올라 초록색이 될 때까지, 허벅지에 경련이 올 때까지 훈련 파트너로 형들을 도왔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하루하루를 살았다”는 오현규는 2025~26시즌 헹크와 베식타시 소속으로 유럽 무대에서 18골을 몰아쳤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다. 주전 공격수로 북중미 월드컵 무대를 밟는 그의 등 뒤에는 동경했던 황선홍이 달았던 등번호 18번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지난 2월 베식타시 데뷔전에서 환상적인 바이시클킥으로 원더골을 터뜨렸던 오현규는 “월드컵에서도 공이 뜨면 바로 몸을 날리겠다”고 했다. 남양주 추어탕집 아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골망을 흔든다면, 전 세계 축구팬 앞에서 추어탕 한 그릇을 시원하게 들이켜는 세리머니를 선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