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안 가본 길을 가고 있다. 올해 1~3월 4%(전년 동기 0.87%)라는 역대급 수익을 올렸다. 박수를 보내면서도 왠지 불안하다. 활활 타는 주식시장에 데지 않을까 해서다.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달 28일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14.9%에서 20.8%로 올렸다. 또 추가 확대 허용치(SAA)를 넓혔으나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는 기금위 위원과 회의 배석자에게 비밀 각서를 받았다. SAA 미공개는 전례가 없다. 원칙 이탈이다.
국내주식은 위험 자산이다. 변동성이 너무 크다. 이달 1~5일 평균 변동률이 이란 전쟁 발발 때보다 높았다고 한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중기자산배분계획(5년)을 짤 때 국내주식 비중을 줄여왔다. 틀에서 이탈하면 자동으로 조정(리밸런싱)했다. 이번에는 이 원칙이 무시됐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2021년 2월 국민연금은 32거래일 연속 매도했다. 개미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원칙을 지켰다”고 말한다.
지난달 28일 제5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국내주식을 팔지 않으니 증시는 안도했다. 선거를 염두에 뒀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도움이 됐는지도 의문이다. 연초에는 국민연금이 환율 방어에 동원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관심에도 부담을 느꼈을지 모른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과 지난달 20일 주가 상승으로 기금이 늘면서 고갈 시기가 20~30년 늦춰졌는지 물었다. 5일엔 “주식 평가를 정상화하는 게 고통 없는 연금개혁의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구조개혁이 더 멀어질 듯한 느낌이 든다.
국민연금은 “증시 부양에 동원된다”는 말을 극도로 싫어한다. 20여년 전 기자가 그렇게 지적했더니 연금공단 이사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 이런 비판을 피하려면 독립성 유지가 중요하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성명서에서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해 거버넌스의 독립성을 훼손하거나 기금을 정책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그러면 기금운용위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만들자는 말이 또 나오게 된다.
은성진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국민연금 수익률의 90% 이상이 자산 배분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번에 언론·정치권 등의 국내주식 비중 상향 주장에 떠밀려 답정너(답이 정해져 있다는 뜻)처럼 비중을 올렸다”고 지적한다.
증시 하락장이 오면 어떡할 건가. 2030년 보험료 수입보다 지급액이 많아지고, 2040년 당기적자가 시작된다. 국민연금은 장기 투자자이다. 한때의 평가이익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국민 노후자산의 불안감을 더 키우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