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 참가자들이 지난 7일 밤 서울 송파구 개표소였던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 모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6·3 지방선거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진상 규명을 위해 8일 여야가 앞다퉈 국정조사 요구서와 특별검사 임명에 관한 법안을 제출했다. 사상 초유의 황당한 사태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파를 뛰어넘어 나오고 있지만, 이번에는 과연 제대로 된 선관위 개혁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그동안 정치권은 나름대로 선관위 개혁을 위한 시도를 이어왔다. 2022년 ‘소쿠리 대선’ 논란, 2023년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 2025년 대선 투표용지 반출 사고 등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여야는 외부 감시 강화와 조직 개편, 인사 검증 확대 등을 담은 법안을 발의해왔다. 이 때문에 선관위 개혁 관련 법안은 이미 국회에 상당수 쌓여 있다.
하지만 늘 반짝 관심에 그쳤다. 선거가 끝나면 관심은 사그라들었고, 상당수 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방치됐다. 21대 국회 때 발의된 법안 대부분은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됐지만 아직까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를 시작조차 하지 않는 법안이 대부분이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김한규 원내정책수석부대표, 이주희 원내대변인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뉴스1
이처럼 선관위 개혁이 늘 용두사미에 그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로는 선관위의 소극적 태도가 꼽힌다. 선관위는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쇄신과 혁신을 약속했지만, 막상 국회가 주도한 법안에 대해선 헌법기관임을 내세우며 “위헌 소지”라거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선관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에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러한 구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건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가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감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직후다. 당시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대국민 사과에 나서며 “헌법기관의 독립성에만 기대지 않고 다양한 외부 통제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국회의 개혁 요구에 직면한 선관위의 입장은 달랐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 5일 오후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 뉴스1
선관위는 헌재 결정 직후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추진한 선관위 특별감사관법과 윤준병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선관위 감사위원회 설치법 모두에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국회 사무처가 작성한 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선관위는 특별감사관법에 대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감안할 때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고, 감사위원회 설치법에 대해선 “선관위 의사결정 과정이 감사 대상에 포함될 경우 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다. 두 법안은 지난해 7월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에 회부된 뒤 심사 없이 계류돼 있다.
2022년 대선 당시 소쿠리 투표 논란 당일 중앙선관위원장을 겸직했던 노정희 전 대법관이 선관위에 출근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며 필요성이 제기된 선관위원장 상임제 도입 법안도 비슷한 처지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과 위성곤 전 민주당 의원(제주지사 당선인)은 각각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선관위는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며 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임하는 현행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둔 의견을 냈다.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인사청문회 도입 법안에 대해서도 인사청문회에 따른 선거 업무 공백 가능성을 이유로 우려를 표했다. 이들 법안 역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곽규택(왼쪽부터)·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과 최은석 원내부대표가 8일 국회 의안과에 '선거관리위원회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고 선관위의 자체 개혁 성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채용 비리 논란 이후인 2023년 7월 외부 인사인 김용빈 전 사법연수원장을 사무총장에 임명하며 쇄신을 선언했지만, 임기 종료 후 다시 선관위 출신인 허철훈 전 사무총장을 임명하며 원점으로 돌아왔다. 결국 자체 개혁 대부분은 흐지부지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에서 법안 개정 등 외부 통제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선관위 ‘대국민 신뢰회복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외부 인사를 불러 몇 차례 회의하는 선관위의 셀프 개혁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며 “헌법기관으로 선관위가 지속 가능한지 개헌을 포함한 국민적 차원의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