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규제와 인간 존엄성 강조 '마그니피카 후마니타스'에 "어쩌면 교회가 현대 세계에 정말 중요한 얘기해 줄 수도" 가톨릭 새로운 전환점 평가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 존엄성 수호를 촉구한 '마그니피카 후마니타스(위대한 인간성)'를 발표한 이후 교황 레오 14세가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일반 알현을 하는 교황 레오 14세.
교황 레오 14세가 인공지능(AI)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인간 존엄성 수호를 촉구한 첫 회칙 '마그니피카 후마니타스(Magnifica Humanitas-위대한 인간성)'를 발표한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 예상 밖의 열광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회칙 발표 직후 30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램 밈 계정 '세인트 혹스'는 교황이 AI를 무장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을 소개하는 영상을 게시했다. 게시물에는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깨어 있는(woke) 교황이 좋다"는 문구가 달렸다. 또 다른 바이럴 게시물에서는 X 사용자가 인터넷 밈을 활용해 "교황이 AI를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자 새로운 바벨탑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 몸에서 무신론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적었다.
이 같은 반응은 지난달 25일 회칙이 공개된 이후 SNS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세계 지도자들 가운데 AI의 급속한 발전이 가져올 위험과 사회적 파장을 진지하게 이해하거나 경고하는 인물이 거의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정치 지도자들은 경제 성장과 혁신을 이유로 거대 테크기업과 협력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 과정에서 테크 최고경영자(CEO)들과 지나치게 가까워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인 레오 14세는 취임 이후 현대 문화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엔 제의를 입은 채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됐다. 회칙에서는 가톨릭 신자였던 작가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마법사 간달프의 말을 직접 인용하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흐름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악을 뿌리 뽑아 우리 뒤에 올 사람들이 깨끗한 땅을 경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교황은 인용문 바로 뒤에 자신의 말을 덧붙였다. "사랑의 문명은 한 번의 거창한 행동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화에 맞서는 작고 꾸준한 충실한 행동이 쌓여 이루어진다."
미국 가톨릭 연구의 권위자인 노스웨스턴대학의 로버트 오시 종교학과 교수는 "이 문서는 미국 출신 교황이 썼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진다"며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행복,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정신이 문서 전체에 흐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시 교수는 "일부 표현은 미국 독립선언문을 떠올리게 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화적 친숙함은 교황이 바이럴되는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최근 바티칸을 방문한 젊은이들은 70세인 교황에게 이른바 '6-7 밈'으로 알려진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동작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밈은 특별한 의미 없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브레인롯(brain rot.무의미한 인터넷 유행 문화) 농담이다. 영상 속 교황은 대부분의 어른 세대처럼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흔쾌히 요청을 받아들였고 주변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일주일 뒤 교황은 전용 차량인 포프모빌 위에서 다시 한번 같은 동작을 하며 군중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런 모습은 교황이 친근하고 유머 감각이 있는 지도자라는 인식을 만들었지만 교황은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실제로 교황은 회칙 전반에 걸쳐 교회가 현대 사회의 문제와 도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칙에서 교황은 "교회의 사명은 역사 전체를 포괄하며 사회적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서도 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이어 "교회는 사회를 형성하는 힘에 대해 자신을 외부인으로 여길 수 없다"며 "오히려 사회가 성장하고 조직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선출된 이후 교황은 정치와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사회 현안에 직접 의견을 밝히고 때로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가톨릭과 현대성의 관계를 연구하는 오시 교수는 레오 14세의 교황직과 이번 회칙이 모두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1960년대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가톨릭교회가 현대 세계와 대립하기보다 대화하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방향 전환이었다. 지금도 교회 내부에서 논쟁적인 주제이기도 하지만 현대화를 추진한 면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오시 교수는 "교황의 회칙은 현대 세계를 향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며 "정죄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존중의 목소리"라고 평가했다.
여기에는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오시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회칙이 나오는 데 없어서는 안될 전주곡이었다"며 "현대 사회의 긴급한 문제에 대해 분명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교회에 남겼다"고 말했다.
교황 레오 14세의 접근법에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회칙 발표 행사에 AI 기업 앤트로픽의 공동창업자인 크리스토퍼 올라를 초청한 점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바티칸은 지난 10년 동안 실리콘밸리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해 왔으며 AI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기 위해 테크업계와 접촉해 왔다.
약 4만2300단어에 달하는 회칙에서 교황은 선의를 가진 모든 남성과 여성에게 "우리 시대의 건설 현장에서 손에 흙이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 같은 적극성은 때로 공개적인 비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교황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이란 전쟁에 대해 신중하지만 분명하게 비판했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JD 밴스 부통령을 비롯한 일부 보수 인사들은 교황의 비판을 정당한 전쟁 이론으로 반박했다.
가톨릭 전통은 오랫동안 특정 조건이 충족될 경우 불의한 침략을 막기 위한 무력 사용을 허용했다. 그러나 교황 레오 14세는 회칙에서 이러한 교리를 직접 언급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이라고 평가했다. "인류는 대화와 외교, 용서와 같은 훨씬 더 효과적인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지난해 11월에는 바티칸에서 '영화의 세계' 행사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과 비고 모켄슨, 거스 밴 샌트 감독, 스파이크 리 감독 등이 참석했다. 리 감독은 교황에게 등번호 14번과 'Pope Leo'가 새겨진 뉴욕 닉스 유니폼을 선물했다. 교황은 행사에서 "영화관과 극장은 공동체를 더욱 인간적으로 만드는 심장과 같은 존재"라며 "알고리즘의 논리는 이미 성공한 것을 반복하지만 예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말했다.
교황은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야구모자를 쓰거나 야구방망이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새로운 형태의 '레오 밈'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한 신부는 교황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웃는 사진과 함께 "신부가 주일 설교를 챗GPT에게 써달라고 부탁한 순간의 시점"이라는 농담을 SNS에 올려 인기를 끌었다. 교황이 AI로 설교를 쓰는 신부를 혼내러 오는 것처럼 보인다는 농담은 여러 상황에 응용되며 퍼져나갔다.
회칙이 발표된 직후에는 코미디언 이사벨 서스턴이 친구와 함께 마가리타를 마시며 인쇄한 회칙을 읽고 토론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교황의 회칙을 베스트셀러나 인기 드라마처럼 대하는 젊은 가톨릭 문화를 드러내는 이 영상은 30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서스턴은 "이 영상이 인기를 얻은 것이 기뻤던 이유는 현재의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교회를 떠난 사람들과 가톨릭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교황의 메시지를 함께 축하하고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시 교수는 이런 흐름이 매우 중요한 순간에 나타난 것에 주목했다. 가톨릭교회는 성직자 성추문 문제로 오랜 기간 신뢰 위기를 겪었다. 이제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것이 오시 교수의 평가다. 그 전환점에 '인공지능 시대 인간 존재의 보호에 관한 교황 레오 14세의 회칙'이라는 부제가 붙은 '마그니피카 후마니타스'가 있다. 오시 교수는 그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교회를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쩌면 교회가 현대 세계에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마그니피카 후마니타스' 오디오북 제작 바티칸 라디오와 바티칸 뉴스 영어 편집팀이 교황 레오 14세의 첫 회칙인 '마그니피카 후마니타스' 오디오북을 제작해 공개했다.
오디오북은 ▶서론 ▶제1장 - 복음에 충실한 역동적 접근 ▶제2장 - 교회 사회교리의 토대와 원칙 ▶제3장 - 기술과 지배, 인공지능의 약속 속에서 바라본 인간의 위대함 ▶제4장 - 변화의 시대에 인간성 수호하기: 진실, 노동, 자유 ▶제5장 - 권력의 문화와 사랑의 문명 ▶결론까지 모두 7개의 음성 파일로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