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삶의 향기] 이중 기준

Los Angeles

2026.06.08 18:1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일요일 법회 후 종종 단체로 탁구 시합을 한다. 보통 한 팀이 열 명쯤 된다. 자주 문제가 되는 경우는 공이 밖으로 나갔는지, 아니면 탁구대 끝에 살짝 맞고 나갔는지 애매한 경우다. 심판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아마추어라 정확한 판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애매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단, 정말 애매한 경우라면, A팀 안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B팀 안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게 맞다. 그런데 실제로는 거의 늘 A팀 열 명은 A팀에 유리한 쪽으로 보고, B팀 열 명은 반대로 본다. 같은 공을 보았는데, 판단은 개인이 아닌 팀에 따라 나뉜다. 우스우면서도 무서운 모습이다.
 
이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단연코 정치다. 두 후보에게 비슷한 법적·윤리적 문제가 있어도 판단은 천양지차이다. 그 차이가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편에 따라 갈린다는 점에서 탁구의 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잘못의 크기가 먼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편이 먼저 정해지고 잘못의 크기와 성격이 나중에 조절되는 식이다.
 
우리는 보통 사실을 보고, 기준을 적용하고, 결론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먼저 정서적 끌림과 거부감이 생긴다. 그다음 편이 정해진다. 그리고 그 편에 맞는 근거를 찾는다. 마지막에는 그것이 객관적 판단처럼 굳어진다. 현대 심리학도 이를 인간 판단의 편향으로 설명한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보는 마음이 이미 물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탁구공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공과 함께 ‘우리 편’을 본다. 후보자의 잘못을 보는 줄 알지만, 그 사람과 진영에 대한 애착과 반감을 함께 본다. 그래서 우리 편의 허물은 용인 가능한 실수가 되고, 상대의 허물은 허용할 수 없는 본질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같은 기준을 반대로 적용해 보아야 한다. 우리 편이 한 일을 상대편이 했다면 나는 어떻게 말했을까. 상대편이 한 일을 우리 편이 했다면 나는 용서했을까. 이 질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편향이다.  
 
둘째, 완전한 공정함보다 덜 불공정함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사람은 온전히 객관적이기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나도 편향될 수 있으니 최대한 덜 기울어 보겠다”고 하는 편이 합리적이고 정직한 태도다. 그 정도만 해도 세상은 덜 거칠어질 것이다.
 
우리는 진실을 보지 못해서 틀리는 경우보다, 주로는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어서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상이다. 아상은 ‘나’에 집착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 입장, 체면, 소속을 지키려는 마음까지 포함한다. 수행은 다른 것이 아니다. 애매한 탁구공 앞에서 내 마음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이 불교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다. 물론 쉽지 않다.
 
일상에서 접하는 일과 사람에 대해 편을 갖지 말라거나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편을 이루고 판단하되, 자신을 살피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자는 것이다. 나와 다른 판단을 하는 사람들도 감정적으로 미워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email protected]

양은철 교무 / Won Meditation Center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