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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돌아온 카세트테이프 음악

Los Angeles

2026.06.0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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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낙희 경제부장

박낙희 경제부장

거실 한 쪽에 놓인 컴포넌트 오디오, 이른바 ‘전축’을 통해 음악을 듣던 중학생 시절 신세계가 열렸다. 바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이하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의 등장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스테레오 사운드로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음악 감상 방식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일본 소니가 세계 최초의 워크맨을 출시한 것은 1979년 7월이었다. 초기에는 당시 일본 대졸 신입사원 월급의 3분의 1 수준인 3만3000엔이라는 높은 가격에다 녹음 기능도 없어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헤드폰만 쓰면 거리와 버스, 공원 어디서든 자신만의 음악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두 달 만에 초기 생산 물량 3만 대가 완판되는 돌풍을 일으켰다.
 
1년 뒤에는 소니의 자회사인 아이와가 ‘카세트보이’를 내놓으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카세트보이는 스테레오 녹음 기능과 강력한 출력으로 차별화를 시도했고, 이후 오토리버스와 FM 라디오, 이퀄라이저, 베이스 부스트 등 다양한 기능을 먼저 선보이며 ‘음질의 아이와’라는 명성을 얻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일본산 전자제품 수입이 금지돼 있어 워크맨과 카세트보이는 남대문시장이나 세운상가 등을 통해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워크맨과 카세트보이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FM 라디오 녹음이 가능한 카세트보이를 선택했다.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녹음 버튼을 누르고, 테이프가 늘어나면 연필로 돌려가며 관리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워크맨의 등장으로 카세트는 미국에서 1983년 처음으로 LP 판매량을 넘어서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CD의 등장과 함께 상황은 급변했다. 디지털 음질과 편리함을 앞세운 CD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카세트는 1990년대 들어 급속히 쇠퇴했고, 2003년 무렵 주요 음반사들이 카세트 신보 발매를 사실상 중단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시장을 장악한 시대에 카세트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새로운 ‘컬처 가젯’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필름카메라와 LP에 이어 레트로 열풍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K팝 그룹은 물론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아일리시 같은 글로벌 스타들도 신보를 카세트로 함께 출시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루미네이트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카세트 판매량은 총 44만6500개로 2015년 대비 6배가량 급증했다.  
 
흥미로운 점은 주요 구매층이다. 카세트를 사용해 본 적 없는 Z세대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구매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재생기기가 없는 데도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소장하기 위해 카세트를 구매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카세트의 부활은 단순한 음악 산업의 변화라기보다 소비자 심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에 가깝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수천만 곡을 즉시 재생할 수 있는 시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을 깊게 듣지 못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음악이 데이터가 된다. 알고리즘이 취향을 분석해 다음 곡을 추천하고 사용자는 몇 초 만에 다른곡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음악을 감상하기보다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카세트는 다르다. 원하는 곡을 찾으려면 되감아야 하고, 앨범 전체를 순서대로 듣게 된다. 불편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음악 경험의 일부가 된다.
 
카세트 인기에 힘입어 최근 속속 출시되는 워크맨 스타일 플레이어를 보면 대부분 투박한 모습으로 과거 소니나 아이와처럼 얇고 정교하지 못하다. 초소형 메커니즘을 만들던 생산 설비와 부품, 기술 인력이 사라졌기 때문에 전반적인 기술력이 발전했음에도 제품은 오히려 퇴보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카세트를 찾는다.
 
AI(인공지능)가 음악을 추천하고 알고리즘이 취향까지 결정하는 시대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을 들려준다면, 카세트는 음악을 기억하게 만든다. 소비자들이 다시 카세트를 찾는 이유는 디지털에서 잃어버린 손에 잡히는 만족감, 소유의 즐거움, 기다림의 설렘과 같은 아날로그 감성을 되찾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박낙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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