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스프린트 훈련에서 황희찬(오른쪽)이 손흥민(오른쪽 둘째)보다 앞서 치고 나가고 있다. 뉴싯
“그런 장면들이 한 번이 아니라 매 경기, 여러 번 나오면 좋겠어요. 저한테도 팀한테도 우리나라에도요.”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한국축구대표팀 측면 공격수 황희찬은 10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훈련장에서 현지 취재진과 만나 4년 전 기적 재현을 꿈꿨다.
그는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3차전 극장골의 주인공이다. 역습 찬스에서 손흥민을 뒤쫓아간 황희찬은 손흥민의 절묘한 침투패스를 오른발 슛으로 그대로 연결해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알라얀 기적’에 이어 ‘과달라하라 기적’을 꿈꾸는 그는 “그런 장면을 위해 지금도 (손흥민과) 많이 소통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 당시 동점골을 합작한 황희찬과 손흥민. 김현동 기자
서른살 황희찬에게 이번이 3번째 월드컵이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에서는 교체투입 후 재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2022년 월드컵에서는 햄스트링 통증을 안고도 16강 기적을 이끌었다. 12일 오전 11시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체코와 1차전을 앞둔 황희찬은 “첫 경기가 특히 중요하다. 카타르 월드컵도 1차전(우루과이전 0-0 무)을 잘 치렀다”고 했다.
황희찬은 체코의 주장이자 센터백 라디슬라프 크레이치(27)와 맞대결한다. 소속팀 울버햄프턴(잉글랜드)에서 그와 항상 같이 밥을 먹는 황희찬은 “서로 ‘우리가 이긴다’는 장난을 많이 쳤다. 똑똑하고 전술 이해도가 높은 선수”라고 했다. 19일 2차전에서 맞붙는 멕시코에도 울버햄프턴 옛동료 라울 히메네스(35·풀럼)가 있다. 둘은 2021년부터 2시즌간 공격 콤비였고, 2021년 뉴캐슬전에서 황희찬의 2골 모두 히메네스가 어시스트했다. 황희찬은 “(토트넘 시절) (손)흥민이 형이랑 해리 케인처럼, 우리도 그런 장면을 많이 만들려고 준비했었다”고 회상했다.
카타르 월드컵 당시 그가 무너뜨린 포르투갈에는 후벵 네베스를 비롯한 울버햄프턴 소속 선수가 3명이나 있었고, 황희찬은 상대 성향과 약점을 대표팀에 공유한 바 있다.
축구대표팀 공격수 황희찬(왼쪽). 강정현 기자
별명이 ‘황소’인 황희찬은 100m를 11초 초중반에 주파하는 폭발적인 스피드를 낸다. 그러다 보니 자주 근육이 찢어지기도 한다. 그는 염증을 유발하는 돼지고기를 끊고 소금을 뿌리지 않는 장어로 대체했고, 밥도 4분의1 공기만 먹는다. 누나 황희정씨가 라면을 끓여 먹을 때면 “냄새만 맡아보자”며 코를 킁킁거린 뒤 조깅하러 간다. 그렇게 체지방률을 12%에서 8%까지 낮췄다.
그의 최고 강점은 ‘돌파’가 아니라 ‘노력’이다. ‘독기’를 넘어 ‘광기’에 가깝고, 축구에서 만큼은 황소고집이 대단하다. 중학생 때 새벽 4시면 일어나 홀로 산을 타고 내려와 주차장에서 볼을 찬 뒤 운동을 안 한 척 누워서 잤다. 2022년 논산훈련소 기초군사훈련 퇴소날 휴게소에서 갑자기 몸이 상했다며 피지컬 트레이닝장으로 직행했다.
이토록 지독하게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은 가족이다. 초등학생 때 부천에서 증조할머니까지 4대가 함께 모여 살았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조부모 밑에서 자란 황희찬이 한 때 머리를 염색했던 이유는 손자를 좀 더 쉽게 알아보시라는 마음에서였다. 카타르 월드컵 귀국 후 가장 먼저 조부모댁으로 달려가 포루투갈전 최우수선수 트로피를 안겨 드렸다. 영국에서 그가 적은 다이어리에는 ‘가족들이 보고 싶고 너무 외롭고 힘들지만 연습해서 이겨내 보자’라고 쓰여 있었다.
태극기를 펼쳐 든 축구대표팀 공격수 황희찬. 김현동 기자
지난해 8월, 6.25 참전용사이자 해병대 5기 황용락씨가 9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에서 부고를 접한 황희찬은 엄청나게 울고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5일 후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골을 터트린 뒤 손목에 입을 맞춘 뒤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손목엔 조부모 한자이름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할아버지로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은 그가 부천시에 기부한 금액만 2억6000만원이다. 나라를 위해 싸운 할아버지처럼 황희찬은 국가대표로 79차례(16골)나 전쟁 같은 경기를 치렀다. 과달라하라 1571m 높은 고도 위에서 황희찬은 하늘에서 지켜 볼 할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손자가 되고 싶다.
소속팀 울버햄프턴이 프리미어리그 최하위로 2부리그로 강등됐다. 프리미어리그 풀럼과 브렌트포드 이적설이 나오지만, 그에게는 대표팀이 먼저다. 그는 “항상 대표팀에서는 날 내려놓고 뛰었다. 아픈 곳은 없고 몸 상태는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