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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토남의 야성’ 드러낸 절벽…백패커 오가던 그 섬 숨은 비경

중앙일보

2026.06.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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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코리아〈37·끝〉고군산군도 관리도
관리도 언덕에서 바라본 선유도 일대의 풍경. 관리도는 고군산군도 전체를 조망하는 전망대다.

관리도 언덕에서 바라본 선유도 일대의 풍경. 관리도는 고군산군도 전체를 조망하는 전망대다.

전북 고군산군도에서 뜻밖의 보석을 찾았다. 고군산군도 한편에 있는 관리도는 백패커들이 알음알음 오가던 섬이다. 하지만 캠핑만 하고 발걸음을 돌리기에는 섬이 간직한 비경이 너무 압도적이다. 섬의 서쪽, 장대한 기암절벽과 천공굴에서 길들지 않은 야성을 발견했다.

고군산군도의 꼬챙이 섬
관리도 가는 카페리호가 출발하는 장자도 선착장. 왼쪽으로 선유봉이 자리한다.

관리도 가는 카페리호가 출발하는 장자도 선착장. 왼쪽으로 선유봉이 자리한다.

군산 장자도에 관리도행 여객선이 오가는 선착장이 있다. 장자도에서 뱃길로 단 10여 분 거리다. 선유도 건너편에 자리한 관리도는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아담한 섬이다. 본래 이름은 ‘串(꼬챙이 곶, 곶 관)’ 자를 써 곶리도(串里島)였으나, 훗날 부르기 쉬운 ‘관리도’로 바뀌었다. 이름에 들어간 꼬챙이가 섬의 풍경을 짐작하게 한다.

배에서 본 관리도는 좌우로 길었고, 그저 숲으로 덮여 있었다. 주변으로 수려한 바위가 드러난 대장도·선유도에 비하면 초라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관리도에 그런 엄청난 비경이 숨어 있을 줄은.

관리도 해안을 따라 걷는 일명 ‘관리도길’이 군산문화관광재단에서 추진 중인 ‘군산 열두섬길’에 속한다. 군산의 14개 섬에 조성되는 열두섬길은 이태 뒤 완전 개통할 예정이다.

관리도 캠핑장 맛본 광어회. 캠핑장 슈퍼에서 자연산 회를 떠준다.

관리도 캠핑장 맛본 광어회. 캠핑장 슈퍼에서 자연산 회를 떠준다.

마을에서 슈퍼와 민박을 하는 김영남(70)씨를 만났다. 그는 10여 년 전 관리도에 빠져 아예 이곳에 정착했다. 산악인이었던 경험을 살려 관리도 산길을 정비하고, 동굴에 안전 로프를 설치했다. 덕분에 지금은 관리도를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그가 떠준 자연산 광어회(5만원)를 들고 캠핑장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었기에, 캠핑장을 전세 낸 듯 누릴 수 있었다.

1950년대까지 고군산군도는 서해 조기 파시의 중심지였다. 칠산바다를 거쳐 연평도로 올라가는 길목에 조기 떼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봄철이면 관리도와 선유도 사이 바다에 수천 척의 어선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관리도 캠핑장은 과거 선유도 초등학교의 분교였다. 조기 떼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관리도를 등졌고, 분교도 91년 2월 문을 닫았다. 그렇게 방치돼있던 폐교를 주민들이 고민 끝에 캠핑장으로 만들었다.

캠핑장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용바위의 거친 모습이 매혹적이다.

캠핑장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용바위의 거친 모습이 매혹적이다.

용바위 앞에서 보낸 밤
용바위를 바라보는 관리도 캠핑장의 B사이트. 해 저물 무렵 텐트와 하늘이 매혹적인 빛으로 반짝인다.

용바위를 바라보는 관리도 캠핑장의 B사이트. 해 저물 무렵 텐트와 하늘이 매혹적인 빛으로 반짝인다.

캠핑장 ‘B사이트’에 닿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앞쪽으로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전망대에 서자 용바위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파도가 용바위에 부딪혀 거품으로 스러지는 걸 한참 지켜봤다. 해 저물 무렵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바다와 하늘을 벗 삼아 광어회를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다음 날 오전 6시 트레킹을 시작했다. 배 시간을 맞추려 서둘렀다. 맑음 예보는 빗나갔다. 바다에 살짝 해무가 꼈다. 비가 안 오니 그나마 다행이다. 길섶에 맺힌 이슬에 바짓가랑이가 젖었지만, 이른 아침에 걷는 게 상쾌했다.

고개를 두어 개쯤 넘은 후 깃대봉(136.8m) 꼭대기에 닿았다. 잡목이 빼곡한 정상을 조금 지나자 조망이 시원하게 열렸다. 능선은 바다로 나가는 용처럼 꿈틀거리고, 그 끝에 천공굴이 있는 만물상이 보였다.

관리도 서쪽 해안의 장대한 기암절벽. 거친 야성의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관리도 서쪽 해안의 장대한 기암절벽. 거친 야성의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 해벽이 시야에 들어오자, 절로 탄성이 나왔다. 해벽은 수천수만 개의 꼬챙이 같은 바위들로 기암절벽을 이뤘다. 마치 통영 연화도의 용머리, 추자도의 나발론절벽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거칠었다. 야성이 펄펄 살아 있었다.

절벽이 이처럼 화려하게 깎인 건 관리도의 지질이 퇴적암이기 때문이다. 수천만 년 전부터 쌓인 진흙과 모래가 굳고 뒤틀리며, 칼날 같은 절벽으로 솟았다. 결을 따라 칼로 자른 듯 툭툭 쪼개지는 퇴적암의 성질과 서해의 거센 파도가 만나, 어디서도 보기 힘든 날카롭고 장엄한 해벽을 완성했다.

쇠코바위라 불리는 천공굴
관리도의 비경인 천공굴. 거친 암반에 설치된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한다.

관리도의 비경인 천공굴. 거친 암반에 설치된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한다.

천공굴 일대는 매우 험하다. 삼거리에서 15분쯤 오르면 천공굴 가는 길이 나오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여기서 마을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고개 두 개를 더 넘으면 천공굴 입구에 닿는데, 온통 절벽이다. 김영남씨가 매단 굵은 로프를 잡고 한 발 짝 한 발 짝 내려오니 천공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앞뒤로 뻥 뚫려 하늘이 훤히 보인다.

굴은 수면에서부터 높이 약 20m, 가로 폭 10m쯤에 달한다. 버스 한 대가 통째로 들어갈 규모다. 굴 주변은 용암 기둥인 주상절리 같지만, 퇴적암 절벽이다. 절벽의 옆구리를 거센 파도가 오랜 세월 파고들어 구멍을 뚫었다. 섬사람들은 이 굴을 ‘쇠코바위’라고 부른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바라보면, 해벽의 구멍이 코뚜레를 꿴 소의 콧구멍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능선으로 돌아와 마을로 향한다. 날이 개자 주변 섬 조망이 일품이다. 오른쪽으로 대장도와 선유도가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깃대봉 너머로는 말도·명도·방축도 등이 아스라하다. 관리도는 고군산군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였다. 이 거칠고 매혹적인 섬이 서쪽 끝을 버티고 서 있기에, 고군산군도의 풍경이 비로소 완성된다.
천공굴로 가는 길에 만나는 퇴적암 기암절벽. 이처럼 험한 절벽은 본 적이 없다.

천공굴로 가는 길에 만나는 퇴적암 기암절벽. 이처럼 험한 절벽은 본 적이 없다.

여행정보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장자도 선착장에서 관리도를 거쳐 방축도와 말도까지 가는 카페리호가 하루 4회 왕복 운항한다. 관리도 캠핑장은 바다 전망 좋은 B사이트가 명당이다. 슈퍼에서 필요한 생필품과 활어회를 살 수 있다. 트레킹 코스는 마을~관리도 캠핑장(용바위)~깃대봉~삼거리~천공굴~마을, 거리는 약 7㎞, 넉넉하게 4시간쯤 걸린다. 길이 거칠고 굴곡이 심한 편이다. 등산화와 스틱을 갖추는 게 좋다.
글·사진=진우석 여행작가 [email protected]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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