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아무도 나를 믿지 않는다. 인생의 완벽한 답안지는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해도, 살아온 만큼 남은 시간을 견딜 수 있다면 축복이고 다행이다.
한계에 도달하면 방향을 바꾸거나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인생의 그림은 완성도를 따지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에 올인하면 흔들리는 마음의 위기를 다스릴 수 있다.
완성도는 어떤 일이나 예술 작품 따위가 질적으로 완성된 정도를 말한다. ‘완성도’는 어떤 작업이 얼마나 완전하게 마무리되었는지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다.
예술작품에서부터 건축물, 심지어 일상적인 업무에 이르기까지, 완성도를 기준으로 그 가치와 질을 판단한다. 완성도는 단순히 ‘끝냈다’는 의미를 넘어서, 얼마나 본래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기대치를 초과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는지를 포함한다.
예술의 완성도는 심미적 만족도를 크게 좌우한다. 같은 그림이라도 선과 색의 조화가 어우러져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보는 사람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사한다.
작가는 세세한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신경 써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고,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메시지가 전달될 때 완성도는 극에 달한다. 완성도는 단순한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가의 열정과 철학이 담긴 영혼의 몸부림이다.
성숙 단계(maturity level)와 완전함(completeness), 완벽함(perfection)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작품에 담긴 의미를 추구하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할리우드의 반항아 제임스 딘은 이유 없는 반항,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에서 젊은이들의 정신을 대변하는 반항적이고 반문화적인 대중문화를 형성해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제임스 딘은 마지막 작품 ‘자이언트’ 촬영을 마치고 애마였던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타고 180km/h로 달리다가 맞은편 차와 충돌해 향년 24세로 사망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Dream as if you’ll live forever, Live as if you’ll die today),’ 그가 남긴 어록은 죽음의 섬뜩한 예견처럼 들린다.
그가 사망한 지 무려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젊음, 스포츠카, 청바지 하면 제임스 딘을 떠올릴 정도로 청춘(靑春)을 상징하는 영원한 우상으로 남아 있다.
제임스 딘은 1956년 ‘에덴의 동쪽’이 영화사 최초로 사후에 아카데미상 연기 부문 후보에 오른 남성 연기자가 된다. 1957년 ‘자이언트’로 다시 한번 후보에 올랐다. 아카데미상 연기 부문에 사후 두 번이나 후보로 오른 사람은 제임스 딘이 유일하다. ‘인간에게 유일한 위대함은 죽지 않는 것이다(The only greatness for man is immortality)는 제임스 딘의 명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뒷마당 텃밭에는 가뭄에도 죽은 듯 살아남는 것이 있고, 살아있어도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잡초들이 자란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무의미하게 사는 일상도 많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확실하지 않다. 살아있는 동안, 죽음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국민화가 박수근의 ‘빨래터’는 단조로우며 소박하고 서민적이며 따뜻하다. 등을 돌린 채 쪼그리고 앉아 빨래하는 여인들은 가슴 속 담긴 한을 물 속으로 씻어 보낸다. 잔잔히 흐르는 물줄기는 지친 삶의 애환을 새로운 예술적 영감으로 승화시킨다.
인생의 완성도는 없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등장인물과 구도를 바꾸고 화려한 색깔로 덧칠을 해도, 때묻은 생의 흔적을 지우기 어렵다. 끝없는 미궁 속에서, 미완성으로 생을 끝맺는다 해도 영혼이 숨쉬는 내일은 위대하다.
삶이 생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해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 있는 것들에 경의를 표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