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해 온 반죽을 꺼내 주세요."
지난 10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6 베라 피자 나폴레타나 챔피언 서울 (2026 VERA PIZZA NAPOLETANA CHAMPION SEOUL)' 현장. 참가자가 반죽통 뚜껑을 열고 하얗게 부푼 도우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심사위원은 반죽을 들어 올려 상태를 살핀 뒤 가까이 가져가 향을 맡았다. 발효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2026 베라 피자 나폴리타나 챔피온 서울 현장. 참가자는 8분 동안 도우를 펴고 토핑을 올린 후, 화덕에서 피자를 구워야한다. 사진 희스토리푸드
참가자는 다시 조리대로 돌아가 손으로 도우를 펴고 토마토소스와 치즈, 올리브오일을 올렸다. 화덕에서 피자를 구워낸 뒤 심사대에 완성품을 올려놓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8분. 10년 넘게 화덕 앞에 선 베테랑도, 4년 차 피자이올로도 예외는 없었다. 대기석에서는 연신 다리를 떨며 순서를 기다리는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응원 나온 가족과 친구들을 향해 애써 웃어 보이는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피자가 화덕 안으로 들어가자 참가자들의 시선도 함께 화덕으로 향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이상 갈고닦은 기술과 경험을 단 8분 안에 보여줘야 하는 무대. 대회장에는 정통 나폴리 피자 장인들의 자존심을 건 긴장감이 감돌았다.
2026 베라피자 나폴리타나 챔피온 서울에서 우승을 차지한 조은희 피자이올로. 사진 희스토리푸드
'2026 베라 피자 나폴레타나 챔피언 서울'은 대한민국 최초로 열린 AVPN 공식 피자 대회로, 이날 행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피자이올로 30명이 참가해 실력을 겨뤘다. 참가 접수는 공고 후 약 40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모았다. 대회 결과 1위는 해비치호텔앤리조트의 조은희 피자이올로가 차지했다. 지오네의 구자태 피자이올로, 엘리스리틀이태리의 임진우 피자이올로가 각각 2위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위 수상자로 호명된 조은희 씨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실력이 뛰어난 참가자들이 워낙 많아 수상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좋은 결과를 얻게 돼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4년 차 피자이올로인 조 씨가 꼽은 나폴리 정통 피자의 매력은 '매일 달라지는 반죽'이다. 그는 "같은 사람이 만들어도 매일 같은 맛이 나오지 않는다"며 "날씨와 온도, 습도에 따라 반죽 상태가 달라지고, 그에 맞춰 계속 조절해야 한다. 그만큼 피자이올로의 노력과 기술,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2026 베라 피자 나폴리타나 챔피온 서울에서 심사위원들이 참가자의 피자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희스토리푸드
실제로 이날 심사는 완성된 피자의 맛만 평가하는 일반적인 요리 경연과는 달랐다. 참가자들이 가져온 반죽 상태부터 도우 성형, 굽기 과정, 향과 맛, 모양까지 정통 나폴리 피자의 기준을 얼마나 충실히 구현했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진형 셰프는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발효 상태"라며 "발효와 굽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밀가루 향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잘 만들어진 나폴리 피자는 밀가루 향이 아니라 구운 빵의 고소한 향이 살아 있어야 한다"며 "향만으로도 발효 상태와 굽기 정도를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사 과정에서 눈길을 끈 또 다른 요소는 치즈의 양이었다. 이 셰프는 "한국 소비자들은 치즈가 많이 들어간 피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통 나폴리 피자는 토마토소스와 치즈, 바질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부 참가자들은 평소 매장에서 손님들에게 제공하던 습관대로 치즈를 넉넉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AVPN 기준에서는 재료 각각의 풍미와 균형을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했는지가 중요한 평가 요소다. 이날 심사에는 나폴리에서 3대째 피자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지오반니 임프로타(Giovanni Improta)를 비롯해 한국 베라 피자 앰배서더 정두원 대표, 한국 최초의 AVPN 공식 마에스트로 피차이올로 베라체 나폴레타노인 이진형 셰프가 참여했다.
심사를 맡은 정두원 대표(왼쪽부터)와 이진형 셰프가 참가자의 피자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희스토리푸드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의 수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이 셰프는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피자이올로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며 "상위권 참가자들은 국제 대회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우승자 3명은 오는 9월 나폴리에서 열리는 '2026 베라 피자 나폴리타나 챔피온' 본선 참가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대회를 한국 나폴리 피자 문화가 한 단계 성장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행사로 평가하고 있다. AVPN 공식 대회가 국내에서 열린 것은 처음으로, 한국 피자이올로들과 이탈리아 본토 장인들이 직접 교류하는 자리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