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광고 되레 거부감 ‘삶 통한 공감’ 못 만들어 자금보다 신뢰가 더 중요 역대 가주 선거들이 증명
캘리포니아 민주당 주지사 예비 후보였던 톰 스테이어(오른쪽)가 '살기 좋은 캘리포니아' 선거운동 행사에서 서비스노동자국제연맹(SEIU) 소속 패트리샤 오르넬 라스와 대화하고 있다.
선거에서 자금, 소위 ‘실탄’은 분명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후보를 알리고, 조직을 구축하고, 유권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돈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정치사는 ‘돈만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주지사 선거에서 탈락한 억만장자 환경운동가 톰 스테이어(Tom Steyer)는 이러한 사례를 또 하나 추가하게 됐다.
이번 예선에서 스테이어는 무려 2억1600만 달러를 개인 자금으로 투입해 160만표(개표 85%) 가량을 얻었다. 한 표를 얻는데 무려 135달러 이상을 쓴 것이다. 이는 미국 정치사에서 후보 개인이 단일 선거에 사용한 금액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그것도 예선에서 말이다.
그러나 막대한 자금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결국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스테이어는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려 했지만, 결국 다른 수많은 부유층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좌절을 맛보게 됐다.
그보다 앞서 어마어마한 액수를 쓰고도 성공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꽤 있었다. 2010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전 이베이 최고경영자(CEO) 멕 휘트먼(공화당)은 자신의 재산 1억4400만 달러를 선거에 투입했다. 당시 이는 미국 역사상 주 전체 선거에 사용된 최대 규모의 선거 자금이었다. 그러나 휘트먼은 민주당의 제리 브라운 후보에게 54% 대 41%로 크게 패배했다.
역시 기업인들이 실탄은 '빵빵'했나보다.
1998년에는 노스웨스트항공 소유주였던 알 체키가 4000만 달러를 사용하며 민주당 주지사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수개월 동안 텔레비전 광고를 쏟아내며 자신을 알렸지만, 결국 그레이 데이비스 후보에게 3대 1 차이로 완패했다. 공화당의 마이클 허핑턴, 기술업계 출신 칼리 피오리나 역시 막대한 자금을 사용했지만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정치 전문가들이 꼽는 첫 번째 이유는 ‘공감 능력의 부족’이다.
유권자들은 성공한 사업가에게 처음에는 호감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천만 달러, 수억 달러를 선거에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일반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선거 성향을 집중 분석하는 ‘포커스그룹’ 조사에서도 “선거에 수천만 달러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내 생활고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반응이 자주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는 공직 경험 부족이다.
유권자들은 주지사나 연방상원의원 같은 고위 공직에 도전하는 후보가 최소한 지방정부나 의회에서 검증받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많은 부유층과 기업가 출신 정치 신인들은 이런 과정을 건너뛴다. 체키의 경우 선거 광고가 대량으로 나오자 유권자들은 “도대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주지사가 되겠다고 한다. 난데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후보는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했다.
과거 선거에서 투표조차 하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휘트먼은 자신이 출마하기 전 주지사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정작 본인은 투표도 하지 않으면서 내 표를 달라고 한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해 공감을 못하는 대목(out of touch)이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역설적으로 ‘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일반 후보는 예산이 제한돼 있어 광고를 전략적으로 집행해야 하지만, 자산가 후보들은 돈 걱정 없이 광고를 계속 내보낸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권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실제로 체키의 광고를 본 유권자들은 “또 저 사람이냐”, “TV를 켤 때마다 나온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너무 자주 보이니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메시지와 이미지보다는 재력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선거는 단순한 마케팅 경쟁이 아니다. 기업 인수합병처럼 자본을 투입해 결과를 얻는 과정도 아니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책뿐 아니라 경험, 공감 능력, 진정성까지 평가한다. 아무리 막대한 재산을 가진 후보라도 자신이 왜 공직에 적합한지 설득하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 그리고 삶의 궤적에서부터 공감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스테이어의 이번 실패는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례다. 선거에서 돈은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오히려 지나친 부는 유권자들에게 거리감을 주고, 후보가 자신들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자금이 아니라 신뢰와 공감이라는 점을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