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 유지돼 온 문신(타투) 관련 사법적 기준에 변화가 생기면서 문신산업 제도화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두피문신(SMP) 시술과 관련한 의료법 위반 사건에서 파기환송 무죄 취지 판결을 내리면서, 그동안 제도권 밖에 머물러 있던 문신산업의 현실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지 제공 : 그레이시티]
이번달 10일 열린 ‘문신산업 제도화의 전환점’ 패널 토론회에서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그레이시티 박준형 대표는 기조발언을 통해 현장 종사자와 소비자들이 겪어온 불확실성, 그리고 향후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박 대표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단순한 처벌 면제나 합법화 논의로 한정하지 않았다. 그는 1992년 당시의 법적 기준이 2026년의 사회 현실과 산업 규모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변화된 현실에 맞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교육 체계와 위생 기준 마련, 업계의 자정 노력 등을 통해 문신산업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안전하고 책임 있는 산업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준형 대표와의 일문일답.
Q. 이번 토론회에 참석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약 10년 가까이 두피문신(SMP) 분야에서 활동해 왔고 현재 국내외 여러 지점을 운영하며 많은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는 단순히 사업가나 시술자로서의 역할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의료법 위반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고, 34년 동안 유지돼 오던 기존 판례가 변경되면서 파기환송 무죄 취지 판결을 받은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은 법률가의 입장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고 직원을 고용하며 산업의 변화를 직접 경험해 온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나의 이야기가 문신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Q.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겪었던 제도적·사회적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사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고객도 있었고 시장도 있었으며 산업도 계속 성장해 왔지만, 법과 제도는 그 현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많은 분들이 문신업계의 어려움을 단순히 불법 여부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한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었다. 법적 지위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고객도 불안했고 시술자 역시 불안했다. 실제로 일부 고객들은 이러한 상황을 악용해 시술 후 환불이나 금전 문제 과정에서 신고를 언급하며 압박하기도 했다.
또 경쟁업체 간 분쟁 과정에서 신고가 이뤄지는 사례도 있었고,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업계 종사자들이 수사나 재판에 휘말리는 일도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시술의 품질이나 안전 때문이 아니라 산업 자체가 제도권 밖에 있었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제도권 밖에서는 교육 기준을 만들기도 어렵고 안전 기준을 정립하기도 어렵다.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시술자와 소비자 모두가 불안과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가 이어졌다.
[이미지 제공 : 그레이시티]
Q. 재판 과정에서 느낀 부담과 심경은 어땠나. 처음에는 화도 났고 억울하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를 속이거나 사회에 피해를 주기 위해 일해 온 것이 아니라 고객의 고민을 해결하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이 길어질수록 감정보다는 책임감이 더 커졌다. 이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직원들이 있었고 고객들이 있었으며, 이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수많은 동료들이 있었다. 만약 제가 패소한다면 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미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부담감도 컸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도 달라졌다. 이 재판은 단순히 나의 무죄를 주장하는 과정이 아니라 ‘1992년에 만들어진 기준이 2026년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질문을 사회에 던지는 과정이라고 보게 됐다. 그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대법원 역시 변화된 사회 현실과 산업 환경을 함께 살펴봤다고 생각한다.
Q. 이번 무죄 취지 판결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미를 단순히 ‘문신이 합법이 됐다’는 데 두고 싶지 않다. 더 중요한 의미는 문신업계의 현실을 법이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국민들이 문신을 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산업에서 일하고 있다. 나 역시 경찰 조사와 압수수색, 재판을 모두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저만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현장에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이번 판결은 저 개인의 무죄를 넘어, 그동안 존재해 왔지만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던 산업의 현실을 사회가 다시 바라보게 된 계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판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34년 동안 답을 찾지 못했던 논의가 이제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 문신산업이 제도권 안에서 안전하게 안착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자유보다 책임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권리를 얻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큰 책임을 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번째는 교육 기준이다. 누구나 쉽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교육과 검증을 거친 사람이 시술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두번째는 위생과 안전 기준이다. 소비자가 안심하고 시술받을 수 있도록 명확하면서도 현실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세 번째는 업계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다. 법과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결국 산업의 수준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 업계가 스스로 높은 기준을 세우고 이를 지켜나갈 때 사회적 신뢰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나는 처음부터 법을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이 길을 걸어온 사람이 아니다. 그저 고객을 만나고 직원을 고용하며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산업 전체의 현실을 이야기해야 하는 자리가 돼 있었다.
나는 문신을 합법화해 달라고 싸운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을 더 안전하게 만들자는 이야기를 해온 것이다. 앞으로도 누군가와 대립하기보다 더 안전한 기준을 만들고, 더 책임 있는 산업을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