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내에서 생기는 불만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더 평등해지려는 욕구에 대한 반작용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갈등이 증폭되면 분열과 폭발, 파멸에까지 이르게 된다.
물은 수평을 이루려 쉼 없이 낮은 곳을 채워간다. 그리고 격차가 큰 곳에선 거센 폭포로 떨어진다. 공기 또한 같은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미풍을 만들고 때로는 태풍으로 몰아친다.
인류 역사는 서로 평등해지려는 욕구로 인해 많은 환난 풍파를 겪었다. 이렇게 얻어낸 이상적 공존 방식이 자유민주주의 제도다. 하지만 모두를 정해진 한계 안에 두면 외형적 평등만 가능할 뿐이다. 진정한 평등은 각자 자신을 누르고 낮추려는 높은 도덕성이 더해질 때 자신의 내면에서 완성된다.
신체적 장애는 개인의 문제다. 하지만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불편을 덜어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드는 것은 그들도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이는 상부상조의 공동선으로 수혜자도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남발되고 있는 ‘장애인 공익소송’은 이런 공동선에 위배되는 일이다. 이는 일부 장애인과 변호사의 과한 욕심이 만들어 낸 부조리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상업 시설물의 경미한 결함을 찾아내, 이를 구실로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업 시설은 법으로 정해진 규정에 따라 건축되고 , 당국의 검사 후에 완공 승인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이에 결함이 있다면 그 책임 소재는 승인한 당국에 있고, 당연히 소송의 대상도 허가를 내준 곳이어야 한다. 건물주나 업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의미다.
사실 주변에는 장애인이 불편을 겪을 만한 시설이 많다. 그러나 완벽한 곳은 있을 수 없기에 이에 적응하는 것도 삶의 과정이고 방식이다.
많은 사람이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까닭에 세상은 이만큼이라도 평온을 유지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