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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첨단기술과 행복

Los Angeles

2026.06.1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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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시인·극작가

장소현 시인·극작가

참말로 좋은 세상이다.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 같은 기계 덕에 생활이 엄청 편해졌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본격적으로 더해지면서 앞으로는 한층 더 편리해질 전망이라니 정신이 한 개도 없다. 편안하게 앉아서 말만 하면 인공지능 로봇이 척척 다 해주고, 조금 더 지나면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읽고 알아서 실행해주는 로봇도 나올 판이라고 한다.
 
골치 아픈 집안일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자동차 운전으로 골치 아플 필요도 없다. 영어 안 통해서 답답할 일도 없다. 사람마다 똑똑하고 충실한 머슴이나 비서를 거느리고 할랑하게 사는 꼴이다. 그야말로 만고강산이다. 만세!
 
하지만, 그런 세상이 되면 행복해질 것이냐는 질문에 자신 있는 대답을 내놓을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귀찮은 일, 힘든 일은 기계가 다 해주는데도 사람들은 더 분주하고, 이런저런 단톡방이 수없이 많아도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여유로워진 시간에 인간은 창조적인 일을 하면 된다지만, 창조적인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저마다 마구 창조를 해대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똑똑한 기계들 덕에 편리해진 만큼 잃은 것도 많다.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근본적인 일들이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전에는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제법 많았다. 자주 쓰는 번호는 당연히 외웠다. 그런데 휴대전화 덕에 이제는 외울 필요가 없다. 내 전화번호도 못 기억해서 쩔쩔매곤 한다. 간단한 덧셈 뺄셈도 못 하고, 지도책 보는 법도 잊어버렸다. 바보가 되어버린 꼴이 참 어이없고 서글프다.
 
뇌를 안 쓰니, 퇴화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뇌가 약해지면 치매에 걸릴 확률도 높아질 것 같다. 나만 그런가?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상당히 근본적이고 심각한 사회문제인 모양이다. 미국의 뇌과학자 재러드 호바스 박사가 상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Z세대의 주의력, 기억력, 독해력, 수학 능력, IQ가 하락했는데, 그 원인은 컴퓨터, 스마트폰, AI 같은 디지털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는 부모 세대보다 자식 세대가 더 우수한 덕분에 인류가 존속, 발전해 온 것으로 여겨왔는데, 인지 발달을 기록하기 시작한 1800년대 후반 이래 처음으로 그런 추세가 깨진 것이라고 한다. 호바스 박사는 이를 두고 ‘사회적 비상사태’라고 경고했다.
 
조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80개국에서 조사한 결과, 학교에 디지털 기술이 도입될수록 학생들의 학습 성과는 저하되고, 하루 5시간 컴퓨터를 사용하는 학생들은 거의 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보다 눈에 띄게 인지 능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기술이 학습의  주된 매개체가 되면서 깊이 있는 사고와 비판적 추론 능력이 약화하였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많은 Z세대는 인지 능력 감퇴를 자각하지 못하고, 컴퓨터나 AI의 도움을 자신의 지능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문명의 대전환이다. 우리 삶의 축이 바뀌고 생존방식이 달라지는 일이다. 그런데, 기계 문명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알 수 없고, 또 그것이 나쁜 일에 쓰일 수도 있는데 그걸 막을 방법이 없다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본 결과, 나는 기계 머슴 부릴 욕심을 과감하게 버리기로 결심했다. 첨단기술에 적응하려 아등바등하느니, 그저 지금처럼 소박하고 불편하게 살다가, 슬그머니 가겠다는 생각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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