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낮 시간대에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에서 시민들은 학업과 업무를 잠시 내려놓고 광화문·여의도 등 길거리와 학교·일터에서 저마다 ‘대한민국’을 외쳤다. 거리에 나온 외국인들 역시 한국의 이색 응원 문화를 즐겼다. 시민들은 경기가 끝나고 직접 쓰레기를 치우는 성숙한 응원 문화를 보여줬다.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체코와의 경기가 열린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경기 시작 전부터 6000여명이 운집했다. 광장은 태극전사를 상징하는 붉은색 응원 도구를 갖춘 시민들로 가득찼다. 붉은색 가발·가면·티셔츠·장갑으로 착용한 이승준(36)씨는 “월드컵은 첫 승이 중요하기 때문에 직접 나왔다”며 “우승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응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6 북중미 월드컵 1차전이 열리는 12일 오전 광화문광장 거리 응원에 참여한 이승준(36)씨가 기운을 끌어올리고 있다. 곽주영 기자
단체 응원에 참여하고 싶은 직장인들을 위해 사무실이 많은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앞에도 대형 전광판과 응원 장소가 설치됐다. 증권사 사원증을 건 직장인들은 김밥을 먹으며 스크린으로 경기를 관람거나 돗자리를 펴고 무알콜 맥주를 마시며 응원에 동참했다. 얼굴과 몸에 태극 문양을 그리고 여의도에 나온 이시우(30)씨는 “대한민국을 응원하기 위해 홍대 미술학원 수강생에게 페이스·바디 페인팅을 받았다”며 “손흥민의 이번 월드컵이 ‘라스트 댄스’라는 말이 있던데, 흥민이형 한 번만 더 뛰어 줘요”라고 했다.
한국의 거리 응원 문화를 경험한 외국인들은 “재밌다”고 입을 모았다. 광화문에서 만난 프랑스 출신 아이든(27)씨는“한국에 3주 동안 여행을 왔는데, 오늘은 축구를 즐기러 왔다”며 “오늘은 한국을 응원하러 왔다. 열기가 너무 뜨거워 재밌다”고 했다. 뚝섬한강공원에서 열린 응원전에도 시민 200여 명이 모였다. 서울시 미래한강본부는 방문객들을 위해 포토존과 체험공간이 마련된 ‘한강플플 북중미 월드컵 팝업’을 오는 28일까지 운영할 예정이다.
경기 종료 후에는 성숙한 응원 문화가 빛났다. 행사를 진행한 직원들은 남겨진 응원막대·음료수 캔 등 쓰레기를 수거했다. 일부 시민은 챙겨온 가방에 쓰레기를 챙겼고, 인파에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질서정연하게 응원 장소를 빠져나갔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한국과 체코의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설치된 축구 거리응원 무대에서 시민들이 역전골을 기뻐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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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직장에서도 “대~한민국”
이번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는 모두 평일 낮(한국 시간)에 열린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가 이른 오전에 열리긴 했지만, 당시에는 거리응원 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단체 응원 문화가 형성된 2002년 한·일 월드컵과 이후에 열린 독일(2006년)·남아프리카공화국(2010년)·브라질(2014년)·러시아(2018년)·카타르(2022년)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경기가 주로 새벽이나 저녁·심야 시간대에 열려 술집이나 거리에서 함께 응원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인 러시아전이 오전 7시에 시작돼 출근길에 경기를 보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조별리그가 모두 평일 낮 시간대에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12일 오전 인천 인하부중 학생들이 박세민 교사의 구호에 맞춰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변민철 기자
인천 인하부중 교실에서는 학생 30명이 수업용으로 마련된 TV로 조별리그 1차전인 체코와의 경기를 시청했다. 경기 시작 전 선발 라인업 확인하며 긴장된 모습을 보이던 학생들은 막상 킥오프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열띤 응원을 펼쳤다. 이들은 한국 대표팀의 득점을 염원하며 경기 내내 응원구호를 외쳤고, 파도타기 응원도 벌였다.
이 수업을 진행한 체육 교사 박세민씨(44)는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인성 함양과 사회성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며 “함께 응원하고 소통하는 문화 통해 배울 수 있는 점도 많아 수업보다는 월드컵 경기를 함께 시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거리로 나오지 못한 직장인들은 외근을 핑계로 회사 밖으로 잠시 나가거나 상사 몰래 휴대전화·컴퓨터를 사용해 경기를 지켜봤다. 직장인 김모(30·성동구)씨는 “꼭 나가야 하는 출장은 아니었는데, 경기를 보려고 일부러 오전에 외근을 잡았다. 정말 이 경기를 어떻게 이겼는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직원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응원에 동참한 기업도 있다. 스타트업 기업인 사운드본 직원들은 이날 맥주와 과자를 사놓고 회의실에 모여 함께 경기를 시청했다. 사운드본 관계자는 “이번 월드컵이 이례적으로 오전 11시에 시작하다 보니 직원들과 같이 보면 재밌을 것 같아 계획했다”며“직원들 사기 진작 차원에서도 긍정적이었다”고 했다.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 치킨집 앞에서 지나가던 시민들이 멈춰서서 축구 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 독자
온라인 단체방에서도 대표팀을 응원했다. 카카오톡이 마련한 실시간 응원 채팅방인 ‘레전드방’과 ‘아이콘방’, ‘고독방’에는 각각 900~2000명의 참여자가 들어와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조호태 붉은악마 의장은 “장소는 중요하지 않으니 조별리그가 열리는 3주 동안은 어디서든 태극전사를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