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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부채를 추억하며

Los Angeles

2026.06.14 20:00 2026.06.1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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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운 전 가주공무원

고동운 전 가주공무원

이른 아침에는 늦가을, 낮에는 한여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환절기 남가주의 날씨다. 어떤 날은 새벽과 한낮의 기온 차이가 30도 이상이다. 새벽에는 잠시 전기장판을 켰는데, 오후가 되니 에어컨이 돈다.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문득 부채 생각이 났다. 마지막으로 부채질해 본 것이 언제였지?
 
요즘도 간혹 접는 부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미국에서도 여름이면 홍보 부스에서 손부채를 나누어 주기도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진짜 부채는 대나무 살을 갈라 종이를 붙여 만든 다소 투박한 것이다.
 
외가에는 낡은 철제 선풍기가 있었지만, 소리도 크고 바람의 세기도 잘 조절이 되지 않아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더위를 낡은 대나무 살 부채로 견디곤 했다.  
 
부채는 사람이 품을 팔아야 바람이 나온다. 세게 부치면 센 바람이 나오고, 살살 부치면 미풍이 나온다. 덥다고 마구 부치다 보면 팔이 아파, 팔을 바꿔 부치기도 하고, 서로 마주 보고 부치기도 한다. 이상하게 내가 부치는 바람보다는 남이 부쳐주는 바람이 훨씬 더 시원했다.
 
그중에서도 할머니가 곁에서 살살 부쳐주는 바람이 가장 시원했지 싶다. 더울 때는 차가운 온돌 바닥이나 마루에 누우면 시원하긴 하지만, 땀에 피부가 달라붙는다. 그래서 돗자리나 삼베 또는 모시 홑청 위에 눕는다. 할머니 곁에 누우면, 할머니가 부치는 부채 바람이 할머니의 땀을 식히고 내게도 온다.
 
부채는 땀을 식히는 일 외에 모기나 파리를 쫓거나 잡는 일에도 쓰였다. 팔·다리에 앉아 피를 빠는 모기를 내려치기도 하고, 먹고 남은 참외나 수박 위에 앉은 파리를 잡기도 한다. 그래서 낡은 부채는 끄트머리가 찢기고, 여기저기 모기와 파리의 피가 묻어 있기 마련이다.
 
그때는 하수 시설이 열악했던 모양이다. 장마철이면 저지대의 부엌에는 아궁이로 물이 스며들기도 했다. 습기를 없앤다고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꺼진 연탄불에 불을 붙일 때도 부채는 쓰였다. 불을 피울 때는 너무 세게 부치면 안 되고 살살 불씨를 키워야 한다.  
 
에어컨이 있는 집은 날씨가 더워지면 창문을 꼭꼭 닫고 블라인드나 커튼을 친다. 찬바람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부채를 부치던 시절에는 더워지면 모두 밖으로 나갔다. 어두워지면 낡은 부채 하나씩 들고 작은 공터에 누군가 내다 놓은 평상 위에 모였다. 어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어두운 외등 아래서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더우면 평상 앞에 와 할머니의 부채 바람에 땀을 식히곤 했다.  
 
이제는 할머니도 없고, 부채도 없다. 그 시절의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고동운 전 가주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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