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에선 ‘핑크’가 대세다. 수많은 선수가 핑크색 축구화를 신고 그라운드를 누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브라질의 알리송, 한국의 손흥민, 튀지니의 탈비, 스코틀랜드의 맥긴, 스웨덴의 구드문드손, 코트디부아르의 디오망데. [AFP·EPA·AP=연합뉴스]
15일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한국축구대표팀 훈련장.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 대다수가 분홍색 축구화를 신었다.
이강인은 아디다스의 F50 하이퍼패스트, 오현규는 나이키의 머큐리얼 베이퍼17, 옌스 카스트로프는 푸마의 퓨처9을 착용했는데 색상은 모두 핑크빛이었다. 손흥민도 경기 당일엔 분홍빛 아디다스 F50 하이퍼패스트 엘리트 레이스리스를 착용한다. 홍명보 감독 역시 분홍과 흰색 축구화를 번갈아 신는다.
축구대표팀 손흥민(왼쪽)이 북중미 월드컵 체코전에서 슈팅을 때리고 있다. 강정현 기자
우리 대표팀만의 상황이 아니다. 북중미 월드컵 초반,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각국 선수들이 앞다퉈 분홍색 축구화를 선보였다. 실제로 다수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이 자사와 계약한 선수들에게 핑크색 축구화를 제공한다.
왜 핑크일까. 가장 큰 이유는 주목도다. 초록빛 잔디와 정반대 색상이라 관중석은 물론, TV와 휴대폰 화면에서도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이키 글로벌 축구화 부문 책임자 오딩가 니마코는 디 애슬레틱과 인터뷰에서 “축구화가 유니폼 색상에 묻히지 않고 돋보이길 원했다. 월드컵 참가국 중 (벨기에 원정 유니폼을 제외하고) 핑크색 유니폼이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대부분 핑크색 축구화를 신고 훈련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핑크 전성시대’는 패션 트렌드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축구화는 기획 단계에서 제품 출시에 이르기까지 1~2년 정도 걸리는데, 글로벌 트렌드 기업 WGSN은 2년 전 핑크와 보라의 경계에 있는 강렬한 네온색 ‘일렉트릭 푸시아’를 트렌드 컬러로 예측한 바 있다. 월드컵처럼 큰 무대일수록 선수들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대담한 색상을 갈망하고, 특히나 요즘 세대 선수들은 화려한 색상을 활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핑크가 대세다 보니 외려 트렌드를 거스르는 선수들이 더욱 주목 받는 기현상도 벌어진다. 앞서 체코전(2-1승)에서 1골 1도움을 올린 황인범의 흰색 미즈노 축구화가 축구 팬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리오넬 메시는 아르헨티나 국기에 쓰이는 연한 파랑+흰색 조합에 금색 포인트가 들어간 축구화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는 6번째 본선 출전을 기념하는 나이키의 금색 축구화를 신는다.
‘축구화는 검정’이라는 오랜 고정관념은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브라질 스트라이커 호나우두가 나이키의 은빛 머큐리얼을 신고 등장하며 깨졌다. 이후 25년간 다채로운 색상의 월드컵 축구화가 쏟아졌다. 유행이 돌고 돌아 이번 월드컵엔 온통 핑크빛 축구화가 그라운드를 수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