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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깨진 유리창

Los Angeles

2026.06.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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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아 수필가

엄영아 수필가

인생이라는 긴 여정 위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어지는 ‘보이지 않는 선’들이 있다. 때로는 서툰 발걸음으로 타인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소중한 기물을 깨뜨려 당혹스러운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50년 전, 갓 신앙의 문을 두드렸던 젊은 날의 나에게도 그런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깊이 박혀 있다.
 
우리 가족은 구역 식구들을 초대한 집으로 갔다. 아이들의 해맑은 공놀이가 한창일 때,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의 손에 들려있던 공이 거대한 통유리창을 향해 날아갔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났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막막함이었다.  
 
그러나 집주인이었던 권사님은 깨진 유리 파편보다 아이의 발끝을 먼저 살피셨다. 간호사였던 그분에게 깨진 유리는 ‘갈아 끼우면 되는 물건’이었지만, 겁에 질린 아이는 ‘다쳐서는 안 될 고귀한 생명’이었던 것이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나에게 수리비를 극구 사양하시던 그분의 인자한 미소는 오랫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 갚지 못한 해묵은 부채로 남았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이가 흐른 며칠 전, 막내딸과의 점심 자리에서 딸의 전화가 울렸다. 20년이나 딸의 집 마당을 관리해온 가드너 아저씨의 기계속으로 돌멩이가 튀어 1400달러짜리 통유리를 깨뜨렸다는 것이었다. 절대 가볍지 않은 금액이었으나, 전화를 받는 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딸은 오히려 “괜찮아요, 아저씨.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라며 연신 부드러운 웃음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묘한 데자뷔를 느꼈다. “엄마, 그 돈이 우리에겐 돈일 뿐이지만 일흔세 살 그 아저씨에겐 식량일 거예요.”
 
딸의 입술을 타고 흐르는 그 말은, 50년 전 나를 감싸 안았던 권사님의 음성과 묘하게 겹쳐 들렸다. 친절과 자비는 공중으로 흩어지는 연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공기 중에 머물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타인의 손을 빌려 되돌아오는 온기였다.  
 
아들이 깨뜨린 유리를 딸이 대신 갚는 이 절묘한 ‘인생의 되돌이표’를 마주하며, 나는 비로소 반세기 동안 품어온 마음의 짐을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세상에 베푼 선의는 결코 허공에서 소멸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씨앗으로 잠들어 있다가, 세월의 강을 건너 자녀의 삶에서 눈부신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오늘 딸이 보여준 넉넉함은 50년 전 내가 받았던 그 사랑이 내 아이의 영혼 속에서 바르게 자라주었다는 증거이리라.
 
깨진 유리창 사이로 스며든 것은 차가운 바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대를 관통하며 흐르는 나의 해묵은 부채의식까지 환하게 비추는 따스한 은혜의 햇살이었다.

엄영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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