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사람, 힘없는 사람의 편에 서야 한다. 군복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게 아닌 만큼 행동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군인인 딸에게 늘 이 같은 말을 건네던 50대 가장이 뇌사 장기기증으로 3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 2월 26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김용섭(53)씨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간과 양측 신장을 기증해 3명의 생명을 살렸다고 16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2월 20일 어깨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갑작스럽게 흉통을 호소하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후 상태가 급격히 악화해 끝내 뇌사 상태에 이르렀다.
가족들은 평소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선한 영향력을 나누고자 했던 고인의 뜻을 떠올리며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외동딸 재경씨는 “아버지는 평소 어려운 사람을 보면 먼저 손을 내밀고 도와주려 했던 분”이라며 “아버지의 마지막 희생으로 누군가가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면 분명 기증을 원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원도 영월 출신인 김씨는 건설업에 종사하며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왔다. 옳지 않은 일에는 소신 있게 목소리를 냈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베풀었다고 유족은 전했다. 딸의 친구들로부터도 ‘아빠’라고 불릴 만큼 다정한 어른이었고, 딸에게는 사회생활은 물론 연애 고민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버지였다.
김씨는 젊은 시절 경찰을 꿈꿨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뜻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못다 이룬 꿈은 딸을 통해 이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재경씨는 제복을 입고 나라를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현재 육군 제2군단 군사경찰단에서 복무 중인 9년 차 직업군인(중사)이다. 재경씨는 “아버지의 꿈과 가르침이 제 진로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딸을 ‘내 분신’이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했던 김씨는 제복을 입은 딸에게 “약한 사람, 힘없는 사람의 편에 서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고 한다.
딸 재경씨가 아버지께 쓴 편지. 사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재경씨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에서 “아버지는 늘 저를 자랑스러워하셨지만 저에게도 아버지는 가장 자랑스러운 분이었다”며 “제게 남겨주신 말씀과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겠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충성”이라고 말했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딸에게 약한 사람의 편에 서라고 가르쳤던 고인의 삶이 마지막 순간 생명나눔으로 이어졌다”며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군인 딸의 아버지가 보여준 숭고한 희생과 따뜻한 마음이 우리 사회에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들어 지난 15일까지 집계된 국내 뇌사 장기기증자는 204명이다. 지난해 전체 뇌사 장기기증자는 370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