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회의적이었다. 'NFT'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한 시절을 풍미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원숭이 그림 파일들이었다. 시세가 무너지고 커뮤니티가 흩어진 자리에 남은 건 '먹튀'라는 조롱과 환멸뿐이었다. 황현기 대표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또 뻔한 코인 팔이 이야기겠지" 하는 선입견이 앞섰다. 메타콩즈 사태 이후 다시 NFT라니, 더더욱 의구심이 들었다.
[펑크비즘 황현기 대표]
그런데 한 시간 남짓한 대화가 끝났을 때, 내 메모장에 적힌 단어는 'NFT'도 '코인'도 아니었다. '노동', '잉여인간', '소유권', 그리고 '가상 국가'였다. 그는 가격의 등락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 인간이 무엇으로 존엄을 지킬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시장은 이미 끝났다고들 하는데, 왜 다시 NFT인가?
많은 분들이 NFT는 끝났다고 한다. 나도 동의한다. 다만 '단순한 그림 파일을 파는 NFT 1.0'이 끝난 거다. PUNKVISM(펑크비즘)이 하는 건 NFT 2.0이다. 실물 가치(RWA)와 조작 불가능한 시스템이 결합된 형태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 하락장의 시련에서 제가 뼈저리게 배운 게 있다. '사람의 선의에 기대면 안 된다'는 것다. 의혹과 검증의 혹독한 시간을 거치면서, 나는 사람이 아니라 완벽히 통제되는 시스템에 집착하게 됐다. 그게 PUNKVISM의 출발점이다.
'시스템에 대한 집착'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 뿌리가 어디인가?
사이퍼펑크(Cypherpunk) 정신이다.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죠. 은행이나 거대 플랫폼 같은 중간 기착지가 수수료만 챙기고 부를 독식하는 구조에 저항하는 것. PUNKVISM은 블록체인과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참여자가 진짜 자산의 주인이 되게 만드다. 나는 이게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불합리한 룰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저항의 결과로 만들려는 게,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다. 그래서 우리는 홀더들을 Punkyvist, 즉 '시민'이라고 부른다.
대화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렀다. 사업 모델을 묻는 질문에 그가 갑자기 'AI 이후의 인간'을 꺼내 들었다.
'사회'를 구축한다는 건 비약 아닌가? 사업가에게 그런 거대한 이야기는 너무 먼 미래 같다.
먼 미래가 아니다. 세계의 거인들이 이미 같은 경고를 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앞으로 수 년 내 일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했고, 빌 게이츠는 '우리는 원래 일하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일자리는 결핍의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했다. 10년 안에 의사도, 교사도 AI가 대체한다. 무서운 건 따로 있다. 세계의 석학들과 거인들이 한목소리로 '노동이 사라진다'고 외치는데, 정작 그 시대를 진지하게 준비하는 곳이 기업도, 심지어 국가조차도 없다는 거다. 저는 이게 정말 심각하다고 본다.
그래서 PUNKVISM이 무엇을 하겠다는 건가?
유발 하라리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AI가 일자리를 빼앗으면 경제 시스템에서 쓸모를 찾지 못하는 '쓸모없는 계급(Useless class)'이 생겨나고, 그들은 게임이나 약물로 달래지는 잉여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경고 말이다. 나는 이 장면이 가장 두렵다. 단순히 돈을 띄워서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가 아니다. 인간이 잉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국가가 던져주는 기본소득만 받고 무기력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참여하고 기여하며 주인공이 되는 '무대'가 필요하다. 샘 알트먼조차 최근 기본소득의 한계를 인정하고 '공유 소유권(Shared ownership)'으로 생각을 바꿨다. AI가 만드는 부를 소수가 독식하지 않고 사람들이 가치를 직접 소유하는 것. 그게 바로 Web3이고, PUNKVISM이 걷는 길이다.
Web3가 거대한 흐름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있는가?
이제는 미국이 국가 차원에서 움직인다. 2025년 7월, 미국은 스테이블코인(달러와 1:1 연동되는 디지털 화폐)을 연방 차원에서 합법화하는 GENIUS법에 서명했다. 여기에 시장 규제 권한을 정리하는 CLARITY법이 상원 논의 중이다. 스테이블코인이 본격화된다는 건, 송금, 결제, 정산 등 은행이 독점하던 모든 금융 인프라가 블록체인 위로 올라탄다는 뜻이다. 나는 이게 스마트폰 혁명보다 더 거대한 해일이라고 본다. 스마트폰이 인간의 '연결'을 바꿨다면, 블록체인은 '소유'와 '돈' 그 자체를 뒤바꾸는 것이다.
그 거대한 흐름에서 PUNKVISM의 자리는 어디인가?
금융 인프라가 깔리면, 그 위에서 작동하는 플랫폼들이 각광받는다. 지금 우리가 SNS에 올리는 글, 사진, 영향력은 모두 플랫폼 기업이 독식한다. 게임 아이템도 서버가 닫히면 휴지조각이 된다. Web3는 이걸 뒤집는다. 내가 만든 콘텐츠, 내 평판, 내 아이템이 온전히 내 소유가 되는 거다. PUNKVISM은 그 '소유의 사회'를 가상 국가의 형태로 가장 먼저 짓고 있는 것이다.
추상적인 철학 말고, 실제로 시민(유저)들은 이 생태계 안에서 무엇을 하게 되는가?
두 가지 강력한 축이 있다. 하나는 'RWA 마케팅 앰버서더 모델이다. PUNKVISM의 홀더는 N서울타워 같은 파트너 브랜드의 공식 앰버서더가 된다. SNS나 블로그에 파트너사를 알리고 인증하면, 시스템이 기여도를 측정해 '마케팅 용역료'를 즉각 지급한다. 즐기면서 한 놀이가 곧 보상(수익)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이 부분은 국내 탑티어 로펌들과 함께 증권성 리스크를 완벽히 걷어낸 합법적 구조로 세팅했다. 또 하나는 '메타버스 아레나(S2E)'다. 틱톡 라이브 배틀처럼, 시민들이 자신만의 펫(토리, 오쿨라)과 무기 NFT를 장착하고 아레나에서 팬들과 함께 겨루며 상금을 쟁취한다. 이 모든 자산과 평판은 서버가 닫혀도 영구적으로 본인의 지갑에 남는다. 노동이 아닌 자발적 놀이가 활동이 되고, 그 활동이 곧 시민권이 되는 것이다.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겠다. 과거 NFT 프로젝트들의 반복된 '먹튀', PUNKVISM은 어떻게 다른가?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선의가 아닌 '세이프가드 시스템'을 특허 출원했다. 첫째, 유저들의 민팅 자금은 우리 지갑이 아니라 정부 인가를 받은 국내 1위 수탁사(KODA) 및 해외 수탁사에 보관된다. 운영진의 횡령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둘째, RWA 파트너 매장의 보증금과 집기는 신탁사가 4억 원 규모의 실물 담보(질권)로 묶어둔다. 사업이 어려워져도 시민의 피해를 완벽히 방어한다. 셋째, 생태계 수익의 일부는 디파이 펀딩 예치 및 PVT 토큰 소각에 쓰여 가치를 펌핑한다. 사람을 믿지 않고 조작 불가능한 시스템으로 신뢰를 강제하는 것, 그게 제가 지난 시련에서 얻은 가장 뼈아픈 해답이다.
거대 담론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의외로 차갑고 구체적인 장치들로 끝났다. 수탁사, 신탁사, 특허, 그리고 앰버서더 정산 시스템.
일론 머스크도, 유발 하라리도 같은 잿빛 미래를 가리킨다. 일은 사라지고 인간은 잉여로 밀려날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그 혼란 속에서 어떻게 돈을 벌지만을 계산한다. 황현기 대표가 다르게 느껴졌던 건, 그가 "인간이 어떻게 잉여가 되지 않고 존엄을 지킬 것인가"를 사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의 철학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너무 앞서간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대중을 잉여 인간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만드는 무대를 구상하고 있었고, 그 비전을 화려한 '말'이 아니라 차갑고 견고한 '구조'로 증명해 내고 있었다.
놀이가 곧 자기 증명이 되고, 기여가 곧 자산이 되는 경제가 정말로 작동할지는 시간이 답할 것이다. 다만 적어도 그는, 그 답을 기다리는 동안 무너지지 않을 탄탄한 방주(시스템)를 가장 먼저 지어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