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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깐부-그 아름답던 날들

Chicago

2026.06.1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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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

이기희

내게도 깐부들이 생겼다. 그동안 나홀로 브루스를 추며 살았다. 외로운 적도 있었다. 사는 게 외롭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래도 외롭지 않다고 버티며 살았다. 누군가 곁에 있어도 외롭지만, 함께 있으면 덜 외롭다.
 
남편은 남이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 티격태격 없으면 심심하고, 늘 곁에 있으면 앙꼬 없는 찐빵처럼 맛이 별로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안전핀이다.  
 
나이 들면 버릴 것이 많아진다. 필요한 것들 보다 필요 없는 것들이 더 많다. 정리 정돈해야 사는 게 편해진다. 뒤죽박죽되면 처리가 난감하다.
 
언젠가 가진 것 모두 버리고 떠나갈 시간이 온다. 작별의 순간은 기별도 없이 다가온다. 내게 소중했던 것들은 타인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자식들도 머리가 커지면 남이다. 제 갈 길이 천리라서 허덕이며 살 것이고, 잠시 그리움의 눈물 한 방울 흘릴 것이다.
 
이 나이(?)에 겁도 없이 장편소설 쓰겠다고 공표했다. 죽기 살기로 집필을 시작했다.  
 
‘파부침주(破釜沈舟), 초(楚)나라 장수 항우가 진(秦)나라 군대를 치러 갈 때 사흘치 식량만 챙기고 솥(釜)은 다 깨뜨리라고 부하들에게 명했다. 항우는 부대가 장강을 건너자 타고 온 배(舟)도 모두 물에 빠뜨렸다. 병사들은 죽기 살기로 싸워 큰 승리를 거둔다.  
 
물러서면 실패한다. 인생에는 되돌이표가 없다. 오락가락할 시간이 없다. 목표가 생기면 할 일이 많아진다. 나이 타령. 사는 걱정 접고 부지런히 배우고 공부한다. 철부지 같은 내 용기가 가소롭고 기특하다. 할 수 있다는 용기와 믿음은 축복이다.
 
살면서 제일 신나는 것은 내 편이 든든하다는 사실이다. 시작과 결과를 안 따지고 무조건 박수갈채 보내는 나의 옛 동무들! 내게도 애인 보다 소중한 깐부가 생겼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구슬이랑 딱지를 니꺼 내꺼 없이 같이 쓰는 친구를 깐부라고 불러 이 단어가 유행했다. 깐부는 단짝 친구나 짝꿍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 해 처음 잠실에서 개최된 고등학교 총동창회에 참석했다. 세월이 망각의 강을 흘러도 옹기종기 풀잎 같은 얼굴들이 서툴게 기억의 바다를 떠돌았다.
 
사실 미국에 살아온 긴 세월 동안 동창들과 장벽을 쌓고 살았다. 서울에 가면 회의나 비즈니스가 끝나면 곧바로 돌아왔다. 사업 돌보고, 화랑과 미술학교 운영하며 아이 셋 챙기는 일은 한시도 눈 돌릴 여유를 주지 않았다.
 
세월은 가도 사랑은 남는 것. 도깨비처럼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부지런하고 싹싹한 강 여사 활약으로 다섯 친구 만남을 주선했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도 없을 만큼 기막힌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제 본 것처럼 다정하게 눈빛이 반짝였다.
 
도란도란 밥 먹고 옥상 카페에서 서울 전경을 바라보았다. 맘 속으로 눈물이 흘렀다. 깐부들이 그룹 카톡 방을 개통했다.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도 ‘괜찮다. 괜찮아’ 한다.
 
20년이 넘도록 미주 중앙일보에 외롭게(?) 매주 실리는 내 한글 칼럼을 깐부들이 매일 읽는다 생각하면 가슴이 뜀박질한다. 외로움은 살별의 흔적으로 사라진다. 사는 날까지 기억할 수 있는 만큼 아끼고 사랑하면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가을에 귀국하면 낙엽에 묻힌 사연들은 반짝이는 별들로 가슴 속에 정표를 찍을 것이다. 그 아름답던 날들은 끝나지 않는 전설로 남아 소설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리라.
 
젠슨 황처럼 요란한 깐부 ‘치맥 회동’이 아니면 어떠리. 서울의 밤을 등에 업고 내일 위한 멋진 건배를 들리라. 초롱초롱 별이 반짝이는 날까지 깐부들의 역사는 계속된다.
 
추억은 전부 기억할 수 있지만, 기억은 전부 추억할 수 없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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