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신입사원 채용에서 ‘대졸 필수’ 시대의 막을 내린다. 인공지능(AI)이 산업의 판을 바꾸는 시대에 학벌보다 문제 해결 능력과 성장 가능성이 중요해졌다는 판단에서다.
17일 SK하이닉스는 이날부터 진행하는 신입 수시 채용부터 학력 제한을 전면 폐지한다고 밝혔다. 기존 채용 공고에 명시됐던 ‘4년제 대학 학사 학위 이상 지원 가능’ 등의 학력 요건을 없애고, 실제 직무 역량과 잠재력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고등학교나 전문대 졸업자라도 현장 경험과 직무 수행 능력, SK그룹 기업 문화 적합성을 갖췄다면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채용의 기준을 학위가 아닌 실력으로 전환한 셈이다.
이번 조치는 기존에 ‘대졸 이상’ 요건이 적용됐던 직군 전형에 적용된다. 그동안 ‘초대졸(전문대 졸업) 이하’로 지원 학력을 제한해 온 전임직(생산직)은 이번 채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학력 철폐 기조가 이른바 ‘반도체 킹산직(생산직의 왕)’으로 불리는 전임직 전형으로도 확대돼, 향후 4년제 졸업자에게도 전임직에 지원할 수 있는 문호가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채용 규모도 키웠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수시 채용에서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핵심인 ‘설계’를 비롯해 소자, 연구개발(R&D) 공정, 제품공학(Product Engineering) 등 주요 직무에 세 자릿수 규모의 신입 사원 선발에 나선다. 수시채용으로는 이례적인 규모다. AI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우수 인재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결정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해 온 AI 시대 인재상과도 맞닿아 있다. 최 회장은 최근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으로 스스로 질문하고 본질을 파고드는 ‘생각 근육’, 기술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적응 근육’,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들과 협업하는 ‘공감 근육’ 등 이른바 ‘3대 근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정형화된 스펙보다 변화에 대응하는 힘과 협업 능력을 갖춘 인재가 AGI(일반인공지능) 시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급변하는 AI 환경에서는 미래 인재의 경쟁력을 정형화된 스펙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복잡한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 변화에 대한 민첩성, 협업 역량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채용 기준 자체를 혁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국내 대기업 채용 문화 변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 본다. 특히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수퍼사이클(초호황기)에 따른 파격적인 보상에 힘입어 잡코리아의 ‘2026 기업 선호도 리포트’에서 ‘당장 출근하고 싶은 기업’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구직자 선호도가 가장 높은 기업이 선제적으로 학벌 문턱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이번 채용 혁신이 지니는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한편, 이번 신입 수시채용 서류 접수는 이날부터 오는 23일까지 진행된다. 지원 연령 제한은 없으며, 세부 전형 일정은 SK하이닉스 채용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