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한남체인이다. 한남체인은 1988년 6월 17일 LA 한인타운의 현재 자리인 올림픽가와 베렌도에 첫 매장을 열며 미주 한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고국의 위상이 세계로 뻗어 나가던 시기에 한남체인은 타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에게 한국의 맛과 정서, 생활의 편리함을 전하는 공간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올해로 창립 38주년을 맞은 한남체인은 단순한 마켓을 넘어 한인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생활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낯선 미국 생활 속에서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 한남체인은 김치와 장류, 생선, 정육, 채소, 반찬, 생활용품 등 한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식재료와 상품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민 1세대에게는 고향의 맛을 되찾아 주는 장소였고, 2세와 3세에게는 부모 또는 친구들과 함께 방문해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생활 속 교실이었다.
한남체인의 시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LA 한인타운은 지금처럼 대규모 한인 상권이 형성된 모습이 아니었다. 한국 식품을 찾는 수요는 있었지만 유통망은 제한적이었고, 신선한 농수산물과 한국식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도 큰 도전이었다. 그러나 한남체인은 ‘한인사회에 필요한 마켓’이라는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꾸준히 길을 개척해 왔다.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들여오고 한국의 맛을 지키는 동시에, 미국 생활에 적합한 편리한 쇼핑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한남체인의 역사는 곧 미주 한인 이민사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이민 초기 한인들에게 마켓은 단순히 장을 보는 곳만은 아니었다. 주말이면 가족이 함께 찾는 생활 공간이었으며, 이웃을 만나 안부를 나누는 커뮤니티의 장이었다. 한국 신문을 집어 들고 세일 품목을 확인하며, 반찬거리와 과일을 고르고 고국 소식을 나누던 모습은 한인타운의 일상 그 자체였다. 한남체인은 이러한 일상 속에서 한인들의 삶과 가까이 호흡해 왔다.
한남체인은 LA 한인타운을 넘어 남가주 한인 상권의 확장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첫 매장을 연 이후 한인 거주 지역이 넓어지고 생활권이 분산되자 토런스와 부에나파크 등으로 발걸음을 넓혔다. 일부 지역에서는 한인마켓이 자리 잡기에 상권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한남체인이 들어선 이후 주변에 식당과 제과점, 미용실, 병원, 사무실 등 한인 비즈니스가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한남체인이 지역 상권의 중심축이 되고, 그 주변으로 새로운 한인 생활권이 형성된 것이다. 지금은 그 외에도 다이아몬드바, 토런스 델아모점, 뉴저지까지 차례로 문을 열었다.
이 같은 과정에서 한남체인은 단순한 유통업체를 넘어 한인 커뮤니티의 경제적 기반을 넓히는 역할을 해왔다. 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한인 식품업체와 납품업체, 소상공인들과 함께 성장하는 상생 구조를 만들어 왔다. 한국에서 수입되는 상품뿐 아니라 미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식품과 농산물, 가공품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한인 비즈니스의 성장과 확장에도 기여했다.
한남체인의 가장 큰 강점은 고객의 생활을 깊이 이해하는 데 있다. 이민자의 밥상에는 단순한 식재료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된장찌개 한 그릇과 갓 담근 김치, 명절상에 오르는 전과 나물, 가족 모임을 위해 준비한 갈비와 생선은 모두 기억과 정서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한남체인은 이러한 한인 고객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세대와 취향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기본을 지켜 왔다. 신선한 식재료와 다양한 한국 상품, 친근한 서비스, 매주 이어지는 세일 정보는 오랜 시간 고객들이 한남체인을 찾게 만든 이유다.
동시에 한남체인은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도 발맞춰 왔다. 지난 몇 년간 한류문화 확산으로 한국 음식이나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남체인의 고객층도 한인사회에만 머물지 않게 됐다. 김치와 고추장, 라면, 불고기, 떡, 반찬, 한국 과자와 음료를 찾는 비한인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한남체인은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창구 역할도 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인 이민자들이 고향의 맛을 찾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인종과 세대가 한국 식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찾는 공간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한자리에서 38년간 묵묵히 영업을 이어가는 한남체인 LA 한인타운점 실내 전경
LA 한인타운 매장은 여전히 한남체인의 상징적인 중심이다. 올림픽길을 따라 이어지는 한인 상권의 한복판에서 한남체인은 오랜 세월 같은 자리를 지키며 지역의 변화를 함께해 왔다. 주변 상권이 바뀌고 세대가 교체되며 소비 방식이 달라졌지만, 장바구니를 들고 한남체인을 찾는 고객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매장 안에는 신선식품 코너와 정육·수산 코너, 다양한 한국 식품과 생활용품, 먹거리 공간이 함께 어우러지며 ‘한인타운 속 작은 한국’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38년이라는 시간은 한 기업의 연륜을 넘어 신뢰의 기록이다. 한남체인이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객과의 약속을 지켜 온 꾸준함이 있다. 좋은 상품을 준비하고 필요한 물건을 가까운 곳에서 제공하며, 어려운 시기에도 지역사회와 함께하려는 노력이 쌓여 오늘의 한남체인을 만들었다.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는 장바구니 부담을 덜기 위한 세일과 프로모션을 마련하고, 명절과 특별한 시기에는 풍성한 상품을 준비하며 고객의 생활을 살펴 왔다.
한남체인의 38주년은 과거를 돌아보는 기념일인 동시에 앞으로의 40년을 준비하는 출발점이다. 한인사회의 세대 구성이 달라지고 소비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온·오프라인 유통 환경도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하지만 한남체인이 지켜 온 핵심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고객 가까이에서 필요한 상품을 제공하고, 한국의 맛과 정서를 전하며,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한다는 약속이다.
지난 2013년 버몬트와 윌셔가 ‘하기환 박사 스퀘어’ 명명식에서 진행된 기념촬영
한남체인 창업주인 하기환·김진수 회장은 “1988년 첫 문을 연 작은 시작은 이제 남가주 한인사회가 함께 기억하는 역사이자 내일을 향한 약속이 됐다”며 “앞으로도 한인들의 식탁과 생활을 책임지는 마켓, 한국 문화를 알리는 공간, 지역 비즈니스와 함께 성장하는 커뮤니티 파트너로서 역할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한남체인의 역사는 한인사회의 일상에 깊숙이 녹아 있다. 오늘도 매장을 찾는 고객들의 장바구니 속에서, 가족의 식탁 위에서, 한인타운의 일상 속에서 그 역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38년 동안 한인사회와 함께해 온 한남체인. 고향의 맛을 전하겠다는 초심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한남체인은 앞으로도 고객의 삶 가까이에서 믿을 수 있는 마켓이자 정겨운 이웃, 한인사회의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