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 뒤흔든 한 번의 충돌 사고 계급 다른 인생들이 맞물린 잔혹 운명 욕망과 집착이 부른 폭력의 연쇄 과정 상처 입은 존재들의 불완전한 화해록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옥타비오는 형수 수사나를 사랑한다. 그의 사랑은 순수한 감정처럼 보이지만, 그 순수함은 곧 폭력과 결합한다. [MUBI]
사랑은 왜 우리를 파괴하는가?
2000년 칸영화제에서 멕시코의 거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그의 장편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를 발표하며 세상에 던진 질문이다.
‘개 같은 사랑들’이라는 뜻의 영화 제목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얼마나 쉽게 파멸될 수 있는지에 대해 거칠고 불온하게 파고드는 영화임을 암시한다. 멕시코시티의 먼지와 피, 엔진 소음과 개 짖는 소리가 뒤엉킨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드라마도, 멜로드라마도 아니다. 그러나 ‘피 튀기는 영화, 살아 있는 영화’로 개봉 전부터 영화제의 주목을 받은 범상치 않은 작품이었다.
배급사 MUBI가 25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4K 복원판이 다음 주 재개봉에 들어간다. [MUBI]
배급사 MUBI는 25주년 4K 복원판을 다음 주 재개봉한다. 이번 재개봉의 의미는 단순히 한 거장의 화려한 출발점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의 매끄러움과 정제된 알고리즘 서사가 지배하는 2026년의 영화 환경 속에서, 이 작품은 2000년 칸영화제에서 뿜어냈던 날것 그대로의 피와 타액, 땀 냄새 가득한 셀룰로이드의 육체성이 2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한다. 동시에 이 영화가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
25년 만에 다시 만난 ‘아모레스 페로스’는 놀라울 정도로 현재적이다. 오늘날 수많은 영화가 우연과 연결의 서사를 소비하지만, 이 작품만큼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폭력을 집요하게 응시한 경우는 드물다. 이냐리투는 하나의 자동차 사고를 중심에 두고 세 인물의 삶을 교차시키지만, 그가 진정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남긴 상처였다. 충돌의 순간보다 그 이후에 드러나는 욕망과 죄책감, 계급의 균열과 고독에 더 깊은 시선을 머무르게 함으로써, 그는 인간이 서로를 파괴하면서도 끝내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임을 냉혹하면서도 뜨겁게 포착해낸다.
영화는 광란에 가까운 추격전으로 시작한다. 피투성이가 된 개를 태운 자동차가 도심을 질주한다. 뒤쫓는 총성과 비명, 그리고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충돌.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압축본이다. 인간들은 어디론가 도망치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 욕망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한다.
거대 도시 멕시코시티라는 혼돈의 세계 안에서, 결코 만날 일 없던 다른 계급의 인간 군상들이 서로의 살점과 운명을 교환하는 잔인한 서사의 시작이다. 이냐리투는 바로 이 참혹한 교통사고의 순간을 하나의 우주적 기점으로 설정한다.
영화가 남기는 것은 사랑의 승리가 아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불완전한 모습일 뿐이다. 사랑은 때로 개처럼 잔인하고 통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다시 사랑을 선택한다. [MUBI]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옥타비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는 형수 수사나를 사랑한다. 그의 사랑은 순수한 감정처럼 보이지만, 그 순수함은 곧 폭력과 결합한다. 수사나와 새로운 삶을 꿈꾸는 그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 개싸움에 뛰어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싸움 자체가 아니다. 영화는 사랑이 인간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옥타비오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결국 폭력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영화 속 코피라는 이름의 개는 인간의 욕망을 대리한다. 코피는 싸움에서 승리할수록 더 큰 돈을 벌어다 주지만, 동시에 더 깊은 파국으로 인물들을 끌고 간다. 사랑은 행복을 약속하는 감정이지만, ‘아모레스 페로스’에서의 사랑은 언제나 거래와 폭력, 소유욕과 결합한다. 수사나를 얻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돈을 얻기 위해 개가 피를 흘린다. 결국 옥타비오는 사랑도 잃고 미래도 잃는다.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영화의 정서를 한층 비극적으로 확장한다. 유명 모델 발레리아와 유부남 다니엘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이다. 둘은 새로운 아파트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하지만 자동차 사고는 그들의 미래를 산산조각 낸다.
발레리아의 다리는 망가지고,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사회적 자산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영화는 여기서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사랑은 상대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다니엘은 발레리아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그녀가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이 아닐 때 그는 점점 무력해진다. 사랑은 현실 앞에서 균열을 드러낸다.
특히 바닥 아래 갇힌 작은 개의 존재는 이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은유처럼 작동한다. 보이지 않지만 계속 들려오는 짖음. 사라졌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존재. 그것은 어쩌면 두 사람 관계 속에 갇혀 있는 욕망과 후회의 목소리다. 사랑은 시작될 때 자유를 약속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를 가두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발레리아와 다니엘은 같은 집에 살지만 점점 더 멀어진다. 영화는 사랑이 붕괴하는 소리를 들려준다.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 엘 치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도덕적 중심이다. 노숙자로 살아가는 그는 과거 혁명가였지만 현재는 청부살인자다. 사회적으로는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인물인 그가 역설적으로 가장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데려온 코피가 자신의 개들을 모두 죽였을 때 그는 분노한다. 하지만 결국 개를 죽이지 못한다. 이 순간 영화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복수와 폭력이 아니라 용서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엘 치보는 코피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본다. 가족을 버렸고, 사람을 죽이며 살아왔고, 평생 죄책감 속에 머물렀던 한 인간이던 그가 코피를 용서하는 행위는 결국 자신을 용서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영화 후반부, 그가 마지막 청부살인을 거부하고 의뢰인과 표적이 된 형제를 마주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그는 죽음 대신 진실을 전달한다.
‘아모레스 페로스’는 결코 사랑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더욱이 사랑을 구원의 도구로 삼지도 않는다. 이냐리투는 사랑이 오히려 우리를 망칠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 때문에 폭력과 결합하고 사랑 때문에 거짓말을 하며 사랑 때문에 삶이 무너진다.
그러나 영화는 절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세 이야기 가운데 가장 어두운 삶을 살아온 엘 치보가 마지막에 도달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화해다. 영화는 인간이 상처 입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상처를 직면하는 순간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영화가 남기는 것은 사랑의 승리가 아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불완전한 모습일 뿐이다. 사랑은 때로 개처럼 잔인하고 통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다시 사랑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