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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바닥을 기어 천리 간다

Los Angeles

2026.06.18 19:12 2026.06.1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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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미술평론가.시인

장소현 미술평론가.시인

‘장일순 평전’을 읽으며 여러 대목에서 머리를 숙였다. 그동안 나온 장일순 선생에 대한 책을 두루 챙겨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우치게 된다. 세상 떠난 지 30년도 지난 분이 여전히 선한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참 궁금하다. “어떤 사람은 사후(死後)에 태어난다”는 니체의 말이 헛소리가 아님을 입증한다는 이현주 목사의 말에 동감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어른들이 계신 덕에 세상이 그나마 허물어 내리지 않고 버틴다는 고마움을 실감한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그 고마움은 커진다.
 
‘장일순이 누구야?’ 라고 묻는 이를 위해서 인터넷 사전의 설명을 옮겨본다.
 
장일순(張壹淳, 1928-1994) 선생은 지학순 주교와 함께 원주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이다. 사회운동가, 교육자이며 생명 운동가, 민중 속의 철학자, 서예가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큰 영향을 주었다.
 
시대를 내다보는 깊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민중(민족)의 앞길을 제시하고, 시대마다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찾았고, 소임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늘 소외되고 핍박받는 민초들과 함께했다.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다녔고, 젊은 시절 정치에 참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사상범으로 몰려 3년간 옥살이를 했고, 세계 평화를 위한 ‘원-월드 운동’에 공감하여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교환하기도 했다.
 
조금 더 알기 쉽게 소개하면, 김지하 시인의 스승이며, 가수 김민기가 아버지처럼 모신 어른이다. 김지하의 생명 사상은 장일순 선생에게 기댄 바 크고, 김민기의 ‘뒷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장일순 선생을 일러 ‘뒷것들의 뒷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본받고 따를 덕목이 너무 많은 우리 시대의 어른, 진인(眞人) 즉 참사람이었다. 그 많은 덕목 중 내가 제일 배우고 싶은 것은 ‘밑으로 기어라’라는 가르침이다.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말고 남을 높이고 공경하는 것이 수행자의 바른 마음이라는 가르침이다. 다른 말로는 하심(下心)이라고 한다. 개문류하(開門流下), 즉 문을 열어 낮은 곳으로 흐르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한순간이라도 하심을 놓치면 안 돼. 잠시라도 모가지를 세우는 일이 없어야 해”라고 가르치시고, 실제로 그렇게 사셨다. “바닥을 기어서 천리를 간다.” 말을 몸소 실천하셨기에 큰 존경을 받는 것이다.
 
장일순 선생은 여러 가지 자호를 쓰셨다. 박정희 정권 동안은 청강(靑江), 80년대 생명운동을 시작하면서는 무위당(无爲堂)을 오래 썼고, 말년에는 조 한 알(一粟子)이라는 스스로를 낮추는 호를 사용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장서각(張鼠角)이라는 호도 사용했는데, 쥐뿔도 없다, 쥐뿔도 모른다는 뜻이다.
 
장일순 선생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종교에 틀에 묶이지 않고, 유불선(儒佛仙)에 두루 밝았고, 동학에도 이해가 깊어 ‘걸어 다니는 동학’이라고 불렸다.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을 존중하는 사랑은 모든 종교가 같다고 보았다.
 
장 선생은 이처럼 여러 방면의 공부가 깊고 넓었지만, 직접 쓴 책은 한 권도 없다. 그 대신 꼭 해야 할 말은 붓글씨로 전했다.
 
장일순 선생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하지만, 투병하지 않고 암을 모시고 살았다. “투병이라니? 무엇과 싸운다는 말인가? 암세포는 내 몸 안의 세포 아닌가? 잘 모시고 의논하면서 가야지. 모시고 간다는 건 병을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풀어주는 거지.”
 
장일순 선생께서 일관되게 강조한 가르침은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제자들에게도 강조했고, 한 텔레비전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는 동안 최소한 자기를 속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면 지극히 행복하겠다.”

장소현 미술평론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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