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6학년이 되던 해, 내 나이 열두 살이었다. 나는 남보다 1년 이른 일곱 살에 입학했다. 내가 똑똑해서 일찍 간 것이 아니다. 시청 호적과에 근무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일곱 살 되던 해에 여동생이 태어나자, 엄마를 뺏겨 서운해하는 내 마음을 달래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들어간 학교는 어린 나에게 참 버거웠다.
창문 밖의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학교 운동장 가에 늘어선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낙엽을 떨어뜨렸다. 아이들의 발에 밟힌 잎사귀는 운동장을 뒹굴었다. 나는 키가 작아 맨 앞줄 2번에 앉았다. 덩치 큰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며 힘차게 뛰어놀 때, 몸이 약했던 나는 그 활기 속에 섞이지 못한 채 늘 햇볕이 잘 드는 벽에 기댄 가냘픈 아이였다.
내 유일한 안식처는 등교 전 아버지와 보내는 짧은 시간이었다. 종로 5가 사무실로 출근하시던 아버지는 자가용 뒷좌석에서 늘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우리 딸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영특한 거 아빠는 다 알지.”
아버지는 일본 출장을 다녀오실 때마다 달콤한 초콜릿과 예쁜 인형을 품에 안겨주셨다. 학교 문 앞까지 나를 안아 데려다주시던 아버지의 넓은 가슴과 양복 깃의 향기는 차가운 교실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충전하는 온기였다.
하지만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따스한 온기는 사라지고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담임 선생님은 체격이 씨름 선수처럼 당당한 여성분이었다. 언제나 하얀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한쪽 손목에는 시계를 차고 손에는 매로 쓰는 긴 나무 자를 들고 다니셨다. 선생님은 워낙 체구가 커서 교실 문을 들어오실 때조차 몸을 비스듬히 틀어야만 했다. 선생님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낡은 마룻바닥은 ‘삐걱, 삐걱’ 소리를 냈다.
교실 풍경 또한 시끄러웠다. 겨울이면 교실 한복판에 놓인 난로 위로 아이들의 양은 도시락이 층층이 쌓였다. 시간이 지나면 맨 밑바닥 도시락의 밥이 누렇게 타 들어가며 구수한 냄새를 풍겼고, 가끔은 틈새로 흘러나온 김칫국물이 뜨거운 난로 위에서 ‘치익-’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가방 안 책과 소지품에 밴 김칫국물 냄새는 그 시절 우리들의 지울 수 없는 체취였다.
점심시간이면 선생님은 교탁 앞에 홀로 앉아 도시락을 드셨다. 뚜껑을 여는 순간 진하고 비릿한 젓갈 냄새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이건 황석어 젓갈을 듬뿍 넣고 담근 거라 아주 맛있다”며 황석어 한 마리를 꺼내어 보이시며 발갛게 익은 총각김치를 자랑하셨다. 집에서 하얀 백김치만 먹고 자란 나에게 그 시뻘건 무는 선생님의 서슬 퍼런 기세처럼 무서웠다. 아작아작 소리를 내며 매운 무를 씹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교실 책상은 성적에 따라 다섯 줄로 나뉘었다. 수, 우, 미, 양, 가. 점수가 적힌 성적표대로 자리를 옮겨 앉아야 했다. 나는 창가에 서서 손바닥을 맞던 날을 잊지 못한다. 선생님이 든 나무 자가 공중 높은 곳에서 ‘휙’ 소리를 내며 내려올 때는 정말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온몸의 피가 발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듯 머릿속이 하얘졌고, 손가락은 고통으로 기괴하게 오그라들었다. 닭똥 같은 눈물이 먼지 앉은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나는 입 밖에도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속으로 간절히 ‘엄마’를 불렀다.
공포를 벗어나려면 외워야 했다. 나는 역대 왕들의 이름과 24절기를 주문처럼 외웠다. 신라 왕들의 이름은 아이들에게 난공불락이었으나, 나는 선생님 앞에 서서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박혁거세, 남해, 유리, 탈해, 파사, 지마, 일성...” 막힘없이 나오는 나의 목소리에 선생님의 미간이 펴지며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24절기를 줄줄 읊던 날, 선생님은 나무 자를 내려놓고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셨다. 그 거칠고 투박한 손길은 손바닥의 통증을 씻어준 유일한 온정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과일 바구니와 하얀 봉투를 들고 학교를 찾아오셨다. 평소 그렇게 엄하시던 분이 엄마 앞에서는 수줍은 소녀처럼 공손하게 웃으셨다. 나중에야 엄마에게 들은 선생님의 사연은 어린 내 가슴에도 슬펐다. 선생님은 전쟁 때 처녀의 몸으로 홀로 월남하셨다고 했다. 이북에 두고 온, 잊지 못한 연인이 있어 평생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한 채 홀로 늙어 가고 계셨던 것이다. 학교를 집 삼아 사시며 그 고독한 세월을 버티게 한 것은 어쩌면 고향의 맛을 닮은 그 알싸한 총각무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우리를 그토록 혹독하게 가르치셨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혈혈단신 내려와 세상을 견디며 지식이 삶을 지키는 유일한 무기임을 뼈저리게 느끼셨을 그분에게, 우리가 외우던 왕들의 이름은 단순한 시험 문제가 아니라 험난한 세상을 살아낼 힘이었으리라. 그때 억지로라도 머릿속에 집어넣던 습관은 훗날 내가 성경 구절을 열심히 외우게 한 귀한 마중물이 되었다. 그 절실함으로 외운 구절들이 전도의 현장에서 거침없이 입술을 타고 흘러나와 타인의 영혼을 적시기도 했다.
그러나 30대 시절에 외웠던 성경 구절도 이제 야속한 세월에 많이 잊었다. 성경의 문장도 하나둘 흐릿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절 외웠던 역대 왕과 24절기는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선생님의 도시락에서 풍기던 황석어 젓갈의 알싸한 냄새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지식은 망각의 강을 건너 사라지지만, 고통 끝에 마주했던 온정은 영혼의 깊은 곳에 화인처럼 남는 모양이다. 나를 울렸던 대나무 자 소리만큼이나 선생님의 총각무 씹는 소리도 외로움이었구나 싶어 그 기억을 다시 가슴에 꼭 안는다.
이제 안다. 무섭기만 했던 큰 체구 뒤에 숨은 선생님의 커다란 외로움이 사실은 사랑을 향한 그리움이었음을. 선생님도 이제 그곳에서 미간을 펴고, 이북에 두고 온 연인과 재회하여 환하게 웃고 계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