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며 치솟던 국제유가가 안정을 찾기 시작했지만, 외환시장 출렁임은 더 커졌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신임 의장의 매파(통화 긴축) 선언 탓이다. 워시 의장의 입김은 강달러로 이어졌고 원화와 엔화를 동시에 밀어붙였다. 원화는 한 달 넘게 달러당 1500원대에 갇혀 있고, 엔화는 198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향해 내려가고 있다.
2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들어 19일까지 원-달러 평균 환율은 1521.4원을 기록했다. 월평균 기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2월(1626.7원) 이후 최고 수준이다. 19일엔 주간 종가 기준 1527.0원을 찍었다. 엔-달러 환율도 이날 161.32엔으로 상승했다. 장중엔 161엔대 후반까지 올라 지난해 최고점인 161.96엔에 바짝 다가섰다. 이 선을 넘으면 엔화 가치는 1986년 이후 최저 수준(환율은 상승)이 된다.
김영옥 기자
원화와 엔화 가치의 동반 추락은 치솟는 달러값 영향이 크다. 달러인덱스는 FOMC 이후 100선을 회복했고, 19일 장중 101선까지 올라 지난해 5월 이후 최고치로 올라섰다.
외환시장의 초점은 호르무즈해협에서 Fed로 옮겨가고 있다. Fed는 지난 17일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했지만 시장은 이를 매파적 동결로 받아들였다.
새 점도표에서 Fed 위원 18명 중 9명이 올해 추가 금리 인상을, 8명은 동결을, 1명은 인하를 전망했다. 중동전쟁 완화가 달러 약세 요인이었다면, Fed의 긴축 신호는 이를 덮어버린 더 큰 변수로 작용했다.
엔저(낮은 엔화 가치)는 이미 위험 수위에 들어섰다. 일본은행(BOJ)이 기준금리를 연 1%로, 31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시장에 큰 영향은 없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BOJ가 금리를 올렸지만 추가 인상 속도를 높이거나 환율 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으로 대응하겠다는 신호는 충분하지 않았다”며 “금리 인상 속도가 느릴 것으로 보이면서 환율 안정 효과도 제한적이었다”고 진단했다.
원화 사정도 다르지 않다. 외환당국의 구두개입과 국민연금 선물환 매도 재개로 한때 1510원대까지 밀렸지만, 워시 의장이 주재한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등장한 강달러에 다시 1530원대까지 올라섰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외국인 주식 매도, 개인·기관의 해외 투자 확대,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 지연까지 겹쳐 수급 불안정은 여전하다.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도 원화와 엔화는 저점이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원화 실질실효환율은 지난해 12월 말 86.49에서 올해 5월 84.75로 2.0% 하락했다. 엔화는 같은 기간 68.46에서 65.93으로 3.7% 떨어졌다.
일본 외환당국은 지난해 4월 말과 5월 초 엔화 방어를 위해 총 11조7000억엔(약 110조원)을 투입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엔화 개입 여부와 Fed의 금리 인상 기대 변화가 관건”이라며 “미국 고용·물가 지표에 따라 Fed의 금리 인상 기대가 커질 경우 강달러 압력이 더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