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銀)이 강물처럼 흐른다. 여기서 ‘은’은 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라는 노랫말 덕분에 친숙한 은하수 다.
이 은하수 사진을 찍으러 갔다.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산인 휘트니 봉(Mt. Whitney)으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 자리한 앨라배마힐스(Alabama Hills). 달빛조차 없는 그믐밤, 황톳길을 따라 차를 몰고 20분쯤 들어가서, 다시 산길을 20분쯤 걸어 오르니 아치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모비우스 아치(Mobius Arch)’다. 안쪽 면과 바깥 면이 꽈배기처럼 뒤틀린 뫼비우스의 띠에서 따온 이름.
밤 10시 반 도착.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두세 팀의 사진작가들이 우리 팀을 경계한다. 이미 촬영을 시작한 이들에게, 누군지 알 수 없는 무리가 웅성거리며 진입하는 것은 신경 쓰이는 일이다. 혹시라도 삼각대를 건드려 밀어 버리기라도 하면 대참사. 게다가 은하수를 보려 깜깜한 밤중 시간을 일부러 골라 찾아온 터인데, 새로 온 사진가들이 카메라를 설치하느라 사방으로 불빛을 켜대면 애써 찍고 있던 사진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로스앤젤레스의 한 사진 동호회 소속 회원 10여 명,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밤하늘 별 사진은 처음이라 어둠 속에서 어렵사리 카메라 설치를 마치고 비로소 하늘을 올려다본다. 노랫말 속 ‘푸른 하늘’은 없고 거무스레한 어둠뿐. ‘하얀 쪽배’도, ‘계수나무 한 나무’도, ‘토끼 한 마리’도 당연히 없다.
그래도 별들은 흐드러지게 쏟아져 내린다. 그 한가운데에 붉은 기가 도는 하얀 띠가 길게 이어져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정말 은빛 강물이 흐르는 듯하다. 모비우스 바위 위로, 동쪽 하늘을 향해 45도쯤 비스듬히 걸쳐 있다.
깜깜한 밤하늘을 대고 초점을 맞추는 일은 까다롭고 어렵다. 밤 12시, 우여곡절 끝에 겨우 몇장을 건졌다. 초록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선 모비우스 바위, 그리고 내면과 외면이 교차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선명하게 뻗어 나가는 은하수와 화면을 가득 채운 별들. 첫 밤별 사진치고는 마음에 든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화면으로 사진을 크게 띄워 보았다. 바위와 은하수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선명하다. 그런데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하나같이 흐른 모습이다. 별 하나하나가 초롱초롱한 점이 아니라, 미세하지만 분명한 ‘선’으로 보인다. 카메라 셔터가 열려 있던 20~30초 사이, 지구가 자전하면서 별들이 움직인 궤적이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별이 흐른 이 은하수 사진은 기준 미달. 하지만 내가 가진 장비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의 한계 속에서 만든 산물이기에 내게는 흐뭇하게 다가온다. 별을 흐르지 않고 완벽한 점으로 고정하려면 더 밝은, 그래서 훨씬 더 비싼 렌즈가 필요하리라.아직은 왕복 10시간의 운전과 하룻밤의 단잠을 고스란히 바친 그 정성에 걸맞은 이 첫 작품에 만족하고 싶다.
나에게 사진의 진짜 묘미는, 뷰파인더 속에 이미지를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 두 눈으로 본 것을 마음의 기억 상자에 담아두는 일. 캘리포니아 시에라 네바다 산맥 동쪽, 휘트니 봉우리 아래 앨라배마힐스에서 2026년 6월 14일 자정에 바라본 은하수. 사진 속에서 별이 좀 흘렀으면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