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자마자 카우치에 기댄 채 잠이 들어 꿈속에서 헤맸다. 이런 경험은 92년 평생 처음이었다. 그것도 장장 14시간이라는 긴 밤이었다.
6월이 오면 떨리는 심정 한구석을 감추려 억제하건만 소리 없는 눈물은 멈출 수가 없다. 다행히 이달에는 큰아들의 생일도 있어 가족과 함께 기쁨을 나누며 주님께 감사한다.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 나의 생명을 구해 주시고 황금 같은 씩씩한 장남을 보내주신 은총에 벅찬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한다.
나는 6·25전쟁이라는 가슴속 매친 응어리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 비명 속 끔찍한 공포, ‘언제 어디서, 나는 파리 목숨이 될까’ 하는 막막한 생각만이 몰려왔다. 수송 트럭에 탑승해 이동 중이던 전우들이 몰살당한 장면을 목격하고는 혼이 빠졌던 기억도 있다. 그들의 영혼은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끔찍한 상상이 어젯밤 나를 공포로 몰지 않았나 싶다.
나이 탓인지, 기억력 저하 때문인지 지난 10여년은 잔잔한 호수처럼 지나갔다. 그 전만 해도 6월이 오면 돌연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싸움박질하는 꿈을 꾸곤 했다. 나도 모르게 6·25전쟁의 공포가 숨어들었던 것이다.
나는 미8군 통신대 카투사 통역관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아직도 그 당시 겪었던 극한의 공포가 가슴 깊이 남아있는 참전용사다. 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참한 비명 속에서 숨져간 수많은 전우를 지켜봤다.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웠던 6·25 참전용사들과 미군 한국전참전용사들의 희생은 물론, 16개 참전국 노병들의 희생에 감사의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이제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의 숫자도 그리 많지가 않다. 그나마 대부분이 노환이나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디 그들을 잊지 말길 바란다.
내가 거주하는 뉴욕주에서 미군 한국전 참전용사총협회 26지회가 창설된 것은 1985년 6월 14일이었다. 창설 당시 3000~3500명 수준이었던 회원 숫자는 41년이 지난 현재 150여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회원 대부분은 병상에 있어 활동이 가능한 노병은 20~30명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샐 스칼라토 전 총협회장의 건강 악화다. 6·25 참전용사인 그는 미국은 물론 한국 정부로부터도 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다. 그는 뉴욕 지역 한인 사회와의 관계도 돈독해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다. 그런 그가 벌써 1년 넘게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전능하신 주님께 호소하며 맡길 수밖에….
우리 참전용사들의 바람은 하나다. 하루라도 빨리 한반도는 물론 세계에 평화가 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여생을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