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자유 지켜낸 희생 계승해야… 노병들의 간절한 당부(2)

Los Angeles

2026.06.22 20:4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삼형제 모두 한국전에 참전
일어 구사 전쟁포로 통역
96세 참전용사 마지막 당부
하와이 출신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마키 츠네토(96.사진)씨는 한국전쟁의 기억이 차츰 희미해지는 현실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자유의 가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진 전쟁이었다”며 “전쟁의 참상과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은 한인사회뿐만 아니라 미국의 젊은 세대에게도 반드시 계승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929년 하와이에서 태어난 마키씨는 일본계 미국인 어머니와 일본국적의 아버지 사이에서 자랐다. 그의 외조부모는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하와이로 이주한 이민 1세대다.
 
마키씨는 “어머니는 하와이 태생이었음에도 당시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한때 미국 시민권을 박탈당해야 했던 시대적 아픔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전쟁과 이민, 사회적 불평등의 격동이 한 가족의 역사에 고스란히 겹쳐 있던 시절이었다.
 
그가 미 육군에 징집된 날은 1951년 6월 4일이다.  
 
마키 씨는 “또래 친구들이 2주 간격으로 군에 소집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차례는 언제 올지 늘 긴장 속에 기다려야 했다”고 전했다.
 
그의 형제들 역시 한국전쟁의 포화와 맞닿아 있었다. 첫째 형 타카 씨는 25세에 자원입대해 미 제25보병사단 소속으로 참전했다. 그는 치열한 포화 속으로 다시 뛰어들어 소대원들을 구출한 공로로 은성훈장을 받았다. 둘째 형 또한 징집된 후 하와이 군기지에서 복무했다.
 
마키씨는 하와이에서 1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뒤, 일본에서 12주간 추가 훈련을 받았다. 이후 부산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미 제7보병사단 소속이었던 그는 부산항에서 군수물자를 열차에 적재하는 항만 물류 업무를 전담했다. 그가 마주한 당시 부산의 풍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이 한창이던 일본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그는 “부산은 전혀 개발되지 않은 황폐한 모습이었다”며 “당시 한 한국인에게 왜 재건 작업이 이뤄지지 않느냐고 묻자 ‘미국인들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항만 업무를 이어가던 그는 서울로 차출되면서 포로 심문 통역병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일본어를 구사하는 포로들의 진술을 영어로 번역하고, 이들의 소속 부대와 위치 등을 파악하는 임무였다. 그는 “심문했던 포로 상당수는 남한 출신이었으나, 북한군에 붙잡혀 강제로 편입된 젊은이들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가 종식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했다.
 
마키 씨는 “한국인들은 내게 늘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백인 병사들과 아무런 차별 없이 똑같이 대우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정전협정이 체결되던 무렵인 1953년 귀국했다. 이후 한 번도 한국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1954년 당시 LA에 거주하던 그는 한국 방문 방법을 문의하고자 LA 총영사관에 전화를 걸었으나, 당장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직원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전쟁 당시 서울 동대문과 서대문의 풍경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는 그는 “이제는 TV 화면으로만 접하는 한국의 역동적인 변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에게 한국전쟁은 잊힌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마키 씨는 “한국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막대한 희생을 낳았음에도 충분히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며 “최소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참전용사들에 대한 존중만큼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한국 정부와 미주 한인사회가 참전용사들을 지원하는 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나이 든 세대들만의 기억 속에 전쟁이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젊은 세대 역시 한국전쟁의 역사와 그것이 오늘날 세계 보편적 가치에 미친 영향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노병으로서 바라는 소망은 명료했다.
 
“전쟁이 남긴 참상을 후대가 깊이 헤아려주길 바랍니다. 한국 정부와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은 참전용사들의 헌신을 끊임없이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이 뒷받침되었는지, 이제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할 때입니다.”

김경준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