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쓰촨성 북부에 위치한 주자이거우 국립공원. 옥빛 호수와 웅장한 폭포가 Y자 협곡을 따라 이어져 있다. 사진은 물빛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한 오화해의 풍경이다. 백종현 기자
지난해에만 315만명의 한국인이 찾았다. 대세의 해외여행지로 뜬 중국 이야기다. 모두투어의 경우 지난달 중국 패키지 예약률이 전년 대비 200%나 뛰었다.
한국 여행자 사이에서 먼저 주목받은 지역이 상하이(上海)와 칭다오(青岛)라면, 다음 차례는 쓰촨성(四川省)의 성도 청두(成都)가 유력하다. 청두는 신선마저 탐낸다는 중국 최고 절경 ‘주자이거우(九寨溝·구채구)’로 가는 관문이자, 쓰촨 요리의 본고장이다.
중국이 사랑한 절경
노호해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관람객들의 모습. 지난해에만 약 1000만명이 주자이거우 국립공원을 찾았다. 백종현 기자
주자이거우는 중국 최후의 비경이다. 중국 서쪽 쓰촨성 깊은 산속 해발 2000~4800m 산맥에 약 50㎞ 길이의 계곡이 뻗어 있고, 그 안에 눈이 시리도록 푸른 114개의 호수와 17개의 폭포가 숨어 있다. 예부터 이 두메에서 살아온 티베트족(장족·藏族)은 그 푸른 호수를 ‘바다’라 믿고 살았단다. 주자이거우, 즉 구채구는 9개의 티베트족 마을이 있는 계곡이란 뜻이다.
청두에서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4시간여 만에 주자이거우 국립공원 입구에 닿았다. 원래는 버스로 10시간 고갯길을 넘어야 했는데, 이태 전 시속 200㎞의 고속철이 놓이면서 교통편이 대폭 나아졌다.
주자이거우는 지난해 역대 최대인 1000만명이 방문했다. 방문객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다. 아직도 많은 중국인에게 주자이거우는 언젠가 가야 할 꿈의 여행지로 통한다. 1970년대 벌목공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원시림 속에 숨어 있었고, 1984년에야 일반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수천 년 묵은 유적지가 널린 중국에서 이 정도면 ‘신상’이다.
쏟아지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흩뿌려지는 진주탄폭포. 백종현 기자
셔틀버스를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폭포와 호수를 넘나든다. 현지 가이드는 “이게 주자이거우의 거대한 속살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걸어서 훑기엔 골짜기의 품이 너무 넓다.
보석 같은 물방울이 쏟아지는 진주탄폭포(珍珠滩瀑布), 호수에 비친 숲 그림자가 호랑이 무늬 같다는 노호해(老虎海) 등 어디를 가도 비현실적으로 푸른 물빛이 먼저 눈을 붙잡았다. 이토록 채도 높은 물빛은 카리브 해나 북유럽의 피오르에서도 보지 못했다. 탄산칼슘 같은 광물질이 풍부해 이런 물빛이 나온단다.
신선놀음하듯 호수에서 호수로
중국에서 유행하는 ‘왕홍 체험’도 주자이거우 깊은 계곡까지 파고들었다. 티베트족 전통의상을 빌려 입은 여행자들이 푸른 호수를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남기고 있다. 백종현 기자
오화해(五花海)는 물속 고목과 이끼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호수가 투명했다. ‘고산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송판 나시 잉어(松潘裸鲤)’만이 물 밑을 유유히 헤엄쳤다. 물고기가 아니라 신선의 연못을 지키는 정령 같았다.
요즘 중국에서 유행한다는 ‘왕홍 체험’도 이 깊은 산골까지 들어와 있었다. 티베트식 전통 의상에 헤어·메이크업까지 갖춘 중국 Z세대가 촬영 기사와 함께 명당을 찾아다녔다. 한 중국인에게 물어보니 “300위안(약 6만7000원)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며주고 사진 보정까지 다 해준다”고 말했다.
리사이 밸리 리츠칼튼 리저브에서 바라본 티베트족 마을. 농사를 짓고 야크와 말을 키우며 살아가는 전통적인 마을 풍경은 이제 점점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백종현 기자
야크를 끌고 초원을 누비던 티베트족은 이제 관광업에 기대 살아간다. 핵심 보호구역 안에서는 목축과 농경이 엄격히 제한된다. 보호구역 바깥 마을에서는 농축산업이 가능하지만 생활의 무게추가 관광업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기념품을 팔고, 여행객을 안내하는 새로운 생계가 된 셈이다. 지난해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주자이거우현 주민의 70%가 관광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리사이 밸리 리츠칼튼 리저브. 주자이거우 주변에 들어선 럭셔리 리조트의 대표 주자다. 티베트족 마을 건너편 산자락에 87개의 독채 빌라가 들어앉아 있다. 백종현 기자
주자이거우도 더는 비경만 보여주는 여행지가 아니다. 자연보호구역 영역을 벗어나면 콘래드·반얀트리 등의 고급 호텔·리조트가 기다리고 있다. 불과 10년 새 바뀐 트렌드다. 하룻밤 방 가격이 최소 200만원을 넘는 ‘리사이 밸리 리츠칼튼 리저브’도 3년 전 티베트족 마을 건너편 산자락에 들어섰다.
역설적이게도 돈 냄새 풀풀 나는 그곳에서 티베트 문화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티베트 불교 회화 ‘탕카(唐卡)’를 그리고, 전통춤과 노래를 배우고, 와인을 곁들이며 야크 고기를 썰어 먹었다. 진 후 총지배인은 “단순히 비싼 숙소가 아니라, 티베트 문화와 여행자를 잇는 통로”라고 말했다.
리사이 밸리 리츠칼튼 리저브의 ‘보리 빌리지’. 티베트식 죽통밥과 티베트 소금을 활용한 국물 요리 등 지역 식재료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내놓는다. 백종현 기자
쉬는 법을 아는 도시 청두
청두에는 훠궈를 먹으며 야경을 즐기는 훠궈 유람선도 있다. 훠궈 유람선이 청두 안순교 밑을 지나고 있다. 백종현 기자
주자이거우에 가려면 청두를 지나야 한다. 『삼국지』에서 촉나라의 수도가 바로 청두다. 중국에서도 도시마다 따라붙는 이미지가 있다. 베이징 사람은 일만 하고, 상하이 사람은 멋에 살고 죽는다는 식. 청두 사람은 여유를 아는 이들로 통한단다.
인민공원의 103년 전통 찻집 ‘허밍차서(鹤鸣茶社)’. 긴 주둥이 주전자로 차를 따르는 전통 차 예술 공연을 보며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백종현 기자
귀 청소를 받으며 한낮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 한국돈으로 약 1만원을 받는다. 백종현 기자
청두 사람의 천하 태평한 기질은 도심 한복판 인민공원에 가면 바로 보인다. 태극권으로 아침을 여는 어르신 무리, 100년 역사의 호숫가 찻집에서 귀 청소를 받으며 차를 홀짝이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 마작을 두는 이들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청두의 느릇한 하루를 흘려 보낸다.
(왼쪽 위부터) 1 세인트레지스 청두의 프라이빗 다이닝 공간 ‘연푸’. 호텔 최상층에서 쓰촨식 훠궈를 즐길 수 있다. 2 판다 모양으로 만든 훠궈용 소고기 3 훠궈 콘셉트의 웰컴 디저트 초콜릿. 4 메리어트 계열 최상위 브랜드인 세인트레지스를 1박 20만원대에 이용할 수 있다. 백종현 기자
청두 여행의 진짜 즐거움은 역시 음식이다. 청두는 맵고 자극적인 향으로 유명한 쓰촨 요리의 본고장이다. 훠궈·마파두부·딴딴면·마오차이(1인용 훠궈)처럼 이름만 들어도 혀가 얼얼해지는 음식이 줄줄이 기다린다. 이참에 실전 회화도 확실히 배웠다. “부야오마(不要麻)”. 얼얼한 맛의 주범인 화자오(花椒)를 빼달라는 뜻이다.
평소 호캉스를 즐기는 이가 아니어도 청두에서는 호사를 누려볼 만하다. 뉴욕에서 1박 300만원을 넘나드는 ‘세인트레지스 호텔’을 20만원대에 누릴 수 있어서다. 청두에 들어선 호텔답게 조식 뷔페에 매콤한 스촨 음식 섹션이 따로 있었다.
더글라스 황 총지배인은 “마작과 전통 공연까지 묵은 훠궈 패키지가 인기 상품”이라며 “작년 NBA 스타 스테판 커리도 훠궈 패키지를 즐기고 갔다”고 귀띔했다.
세인트레지스 청두에서 본 청두 시내의 모습. 백종현 기자
여행정보
김지윤 기자
인천~청두는 비행기로 약 4시간이 걸린다. 성수기(4~11월) 주자이거우 입장료 어른 190위안(약 4만3000원). 구글맵·카카오톡 등이 방화벽에 막혀 있어, VPN이나 로밍을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요즘 중국은 현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알리페이·위챗 같은 앱으로 간편 결제는 물론이고 택시 호출, 식당 예약, 배달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