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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폭풍에도 폭설에도 100년간 24시간 지켰다…美 무명용사의 묘

연합뉴스

2026.06.2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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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대전 및 한국전쟁서 목숨 잃고도 신원 확인 안 된 미군 유해 묻혀 1926년부터 100년간 엄선된 부대가 계절·날씨 상관없이 24시간 경비
[르포] 폭풍에도 폭설에도 100년간 24시간 지켰다…美 무명용사의 묘
1·2차 대전 및 한국전쟁서 목숨 잃고도 신원 확인 안 된 미군 유해 묻혀
1926년부터 100년간 엄선된 부대가 계절·날씨 상관없이 24시간 경비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이유미 특파원 = 오전 9시(현지시간) 정각이 되고 종이 울리자 제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지휘관이 나타났다.
미 워싱턴DC 인근 알링턴국립묘지 꼭대기의 '무명용사의 묘' 앞에서 경비 임무 교대식을 주관하러 나온 것이다.
표정이 없는 얼굴로 일정한 속도와 보폭으로 묘 앞으로 걸어와 경례했다. 양 팔이 벌어지는 폭까지 계산해 훈련한 듯 흐트러짐 하나 없는 정갈한 걸음이었다.
지휘관이 뒤로 돌아 참배객들에게 교대식에 대해 설명하고는 기립 상태로 정숙을 지키며 지켜봐달라고 했다. 전장에서 명령을 내리듯 우렁차고 절도 있는 목소리였다.
지휘관이 나타난 쪽에서 새 경비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휘관은 새 경비병에게 걸어가 끄트머리에 단검이 달린 M-14 소총을 낚아채듯 가져가 검사를 시작했다.
총기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라도 하듯 철저한 검사가 이뤄졌다.
지휘관은 검사를 마친 뒤 소총을 든 새 경비병과 교대 시간이 된 경비병을 중앙 양 옆에 세웠다. 이어 참배객들이 참여한 상태에서 헌화가 이뤄졌다.
부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엄숙한 분위기가 경비병들의 반듯하고 절제된 움직임 속에 더욱 엄숙하게 느껴졌다.
22분간의 교대식을 마치고 새 경비병이 소총을 든 채 묘 앞에 섰다. 잠시 후 9시 30분이 되자 다시 똑같은 의식이 치러졌다.
무명용사의 묘에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미국인 장병의 유해가 묻혀 있다.
고국을 떠나 타지의 전쟁에서 전사한 뒤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많은 이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무명용사의 묘를 무장한 경비병들이 지키기 시작한 것은 1926년 3월이다. 그 이후로 100년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24시간 경비병이 곁을 지켰다.

동절기에는 1시간마다, 하절기에는 30분마다 교대식이 거행된다. 국립묘지 참배객과 방문객 모두가 한 번쯤은 참관하는 대표적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폭풍우가 와도 허리케인이 와도 무장 경비과 교대식은 중단되지 않는다. 아무리 궂은 날씨라 하더라도 워싱턴DC 시내를 내려다보는 무명용사의 묘에서는 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의식이 치러지는 것이다.
한국전쟁 76주년을 이틀 앞둔 23일 미 콜로라도주에서 워싱턴DC로 여행을 왔다가 국립묘지를 방문했다는 60대 정도의 미국인 부부는 교대식이 끝나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내 캐시는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다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면서 "그들의 영혼이 머무를 자리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남편 라이언도 "어떤 것들은 실제로 봐야 실감할 수 있다"면서 "국립묘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무명용사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고 그들을 기리기 위한 의식이 계속되고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무명용사의 묘에 1921년 처음으로 1차 세계대전 미국인 전사자 1명의 유해가 묻혔을 때는 경비병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명용사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1926년부터 무장 경비가 시작됐다.
한국전쟁 전사자의 유해가 묻힌 건 1958년 5월이다. 2차 세계대전 전사자 유해와 함께 안치됐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대통령이 안치된 두 용사 모두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당시 유해 안장 행사는 성대하게 열렸다. 대형 성조기로 덮은 관이 미 의회의사당에 잠시 머물며 애도를 표하는 수많은 미국인을 맞았다.
알링턴 국립묘지로의 이동과 유해 안장도 미군 최고의 예우 속에 이뤄졌다. 무명용사의 묘 뒤쪽 기념관에 당시의 사진 자료가 설명과 함께 전시돼 방문객의 이해를 도왔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은 3만6천574명이다. 1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북한과의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55개의 미군 유해 상자가 귀환했고 국방부 전쟁 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에서 신원 확인 작업을 하기도 했다.
무명용사의 묘 경비병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엄격한 조건과 절차를 거쳐 선발되는데, 남성은 178∼193㎝, 여성은 173∼188㎝의 키에 균형 잡힌 체형과 체중이어야 한다.
흠 없는 군경력도 필수다. 2주나 되는 시험 기간 중에는 알링턴 국립묘지의 역사에 대한 7쪽 분량의 내용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암송해야 한다.
1단계를 통과하면 국립묘지 내 묘지 300곳의 위치는 물론 경비병 교대식의 복잡한 순서와 무기 사용법 등을 익혀야 한다.
이들은 1784년 창설된 미 육군의 유서 깊은 부대 제3보병연대에 소속돼 있다.
육군의 공식 의장대와 대통령 호위도 이 부대의 역할이지만 무명용사의 묘를 지키는 이들은 '정예 중의 정예'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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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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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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