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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돌아온 김주형

중앙일보

2026.06.24 05:40 2026.06.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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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이 3라운드 후 캐디 데이비드 부커와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김주형이 3라운드 후 캐디 데이비드 부커와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라운드를 마치고 18번 홀 그린을 빠져나가려던 순간, 갤러리들이 일어서 “해피 버스데이 톰 킴”을 합창했다. 김주형(24)은 모자를 벗어 들고 두 팔을 활짝 벌려 팬들에게 인사했다.

기우는 태양 빛과 대서양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생일 축하 노래를 듣는 그의 표정엔 한동안 잊고 있던 무언가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골프가 즐거움이라는 것.

22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시네콕 힐스 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제126회 US오픈에서다. 강풍이 몰아친 난코스에서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는 딱 세 명이었다. 우승자 윈덤 클락, 준우승 샘 번스, 그리고 김주형. 한국 선수 US오픈 역대 최고 성적이다.

김주형에게 마지막 영광의 기억은 꼭 2년 전이었다.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에서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와 우승 경쟁을 펼쳤다. 두 사람은 생일이 같다. 2라운드 함께 생일을 맞았다. 김주형에게 끝은 좋지 않았다. 연장전에서 셰플러에게 패했다.

그보다 2년 전인 2022년, 김주형은 PGA 투어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20세 3개월의 나이에 2승을 올려 타이거 우즈(20세 9개월)보다도 빨랐다. PGA 투어 홈페이지는 "김주형은 우즈를 거울로 보는 것 같다"고 평가했고, 미국 미디어들은 "세계 1위를 할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김주형이 최종라운드를 마친 후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갤러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김주형이 최종라운드를 마친 후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갤러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너무 어린 나이에 최고 자리에 오르는 건 저주일지도 모른다. 유명세, 내외부의 기대, 정상권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스스로를 옥죈다. 이 굴레를 이겨내는 선수는 많지 않다.

운도 없었다. 2024년 전성기 타이거 우즈처럼 군림하던 셰플러와 네 번이나 최종 라운드를 같은 조에서 겨뤘고 네 번 모두 조금씩 모자랐다. 그해 플레이오프 1차전 마지막 세 홀에서 5타를 잃어 한 타 차로 2차전 진출에 실패했고, 이듬해 마스터스와 시그니처 대회 출전권을 잃었다. 그때가 분수령이었다. 이후 김주형은 맨손으로 다시 시작해야 했다.

2025년엔 어드레스 후 몸이 굳는 입스 증세도 보였다. 2026년에도 신통치 않았다. US오픈을 앞두고 페덱스 랭킹 98위, 세계 랭킹 141위. “세계 랭킹 1위가 될 선수”로 꼽혔던 그는 벼랑 끝에 몰렸다.

반전의 계기는 두 곳에서 동시에 왔다.

지난 겨울 결혼했다. 부인 이서연 씨는 선교사 아버지를 따라 몽골·인도네시아 등 외지에서 긴 시간을 이방인으로 보내며 자란 사람이다. 김주형도 어린 나이에 프로로 전향해 태국 등에서 치열한 세상과 맞서 살았다. 김주형은 “함께 기도로 문제를 해결해가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올해 2월부터는 타이거 우즈를 가르쳤던 션 폴리 코치와 함께하기 시작했다. 폴리는 김주형을 가르치기 전부터 다른 선수를 지도할 때 그의 스윙 영상을 교재로 쓸 만큼 높이 평가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신뢰할지 짐작이 된다.
우승자인 윈덤 클락. 최종라운드 난코스에서 3오버파 합계 7언더파로 우승했다. AP=연합뉴스

우승자인 윈덤 클락. 최종라운드 난코스에서 3오버파 합계 7언더파로 우승했다. AP=연합뉴스


김주형은 가장 어려운 US오픈에서 올해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지역 예선부터 밑바닥을 거쳐 올라온 결과였다. 그는 어려울수록 더 빛나는 선수다. 2022년 윈덤 챔피언십에서 첫 홀 쿼드러플 보기를 치고도 5타 차로 우승했고, 2023년 디 오픈에선 발목을 접질린 데다 악천후까지 겹쳤지만 준우승했다.

폴리는 이번 대회 후 SNS에 이렇게 썼다. “김주형은 골프에 영혼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그런 광경은 본 적이 없다. 시련은 누구도 원치 않지만, 지나고 보면 감사한 마음뿐이다.”

4대 메이저를 포함한 PGA 투어 대회 출전권을 모두 확보했다. 플레이오프 진출도 무난해 보인다. PGA 투어 이너 서클에 다시 들어섰다. 그러나 더 의미 있는 건 따로 있다. 골프가 즐거움이라는 것을 다시 기억해냈다. 스물네 번째 생일에 받은 선물이다. 그리고 US오픈이 증명했다. 팬들도 김주형을 잊지 않고 있었다.


성호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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